시킨 대로 했는데 눈치 없다는 말을 들었다면 — 회사 규칙은 줄임말입니다
회사에서 다 같이 비빔밥을 해 먹기로 한 팀이 있었습니다. 본부장이 낸 아이디어였고, 각자 재료를 하나씩 사 와서 같이 비벼 먹자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사 온 건 고사리, 시금치, 제육볶음이었습니다. 다 같이 비벼도 이상할 게 없는 것들이죠. 그런데 신입 한 명이 고수를 한 봉지 사 왔습니다. 네 명이 그걸 못 먹는다고 바로 이야기했는데, 신입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이건 규칙인데요."
본부장이 신입 편을 들어서 고수는 그대로 들어갔고, 그날 이 이야기를 게시판에 올린 사람은 이렇게 적었습니다. 재료 하나로 저 신입의 센스와 사회성을 본 것 같다고요.
댓글은 갈렸습니다. 신입이 눈치가 없다는 쪽도 있었고, 고수를 못 먹는 사람한테 규칙이라고 밀어붙인 게 문제라는 쪽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양쪽 다 놓친 게 하나 있습니다. 이 신입은 규칙을 하나도 어기지 않았다는 겁니다.
규칙을 정확히 지킨 사람이 왜 눈치 없다는 말을 들었을까요
문제는 신입이 규칙을 어긴 게 아니라 너무 정확하게 지켰다는 데 있습니다. 각자 재료 하나씩, 사 왔으니까요. 빠뜨린 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규칙을 어긴 것보다 나빴습니다. 네 명이 못 먹는 비빔밥이 나왔으니, 원래 하려던 일 자체가 안 된 거죠. 규칙은 다 지켰는데 그 규칙이 지키려던 게 깨진 겁니다.
여기가 회사에서 사고가 제일 자주 나는 자리입니다. 그리고 이런 일이 벌어졌을 때 대개는 규칙이 아니라 사람이 채점당합니다. 센스가 없다, 사회성이 부족하다, 눈치가 없다는 말로요.
회사에서 규칙이라고 부르는 건 대부분 줄임말입니다
회사의 규칙은 대부분 원래 뭘 하려던 건지를 짧게 줄여서 적어놓은 것입니다. 그래서 줄임말에 가깝습니다.
이 비빔밥의 원래 목적은 다 같이 한 그릇 먹자는 것이었고, 각자 하나씩은 그걸 하려고 정한 방법이었습니다. 그런데 줄이는 순간 목적은 빠지고 방법만 남습니다. 남은 문장에는 "각자 하나씩"밖에 없으니, 그 문장만 읽고 움직이면 고수를 사 오는 게 정답이 됩니다.
회사 규칙 대부분이 이렇게 생겼습니다.
| 규칙으로 전달되는 말 | 줄이면서 빠진 원래 목적 |
|---|---|
| 보고는 금요일 오전까지 | 주간 회의 전에 팀장이 미리 읽고 판단할 게 있다 |
| 외부 메일은 팀장 참조 | 밖으로 나간 말을 팀이 같이 알고 있어야 한다 |
| 회의록은 당일 공유 | 그날 정한 걸 기억이 흐려지기 전에 못 박는다 |
| 각자 재료 하나씩 | 다 같이 한 그릇 먹는다 |
오른쪽이 왼쪽보다 훨씬 중요한 말인데, 실제로 새로 온 사람에게 전달되는 건 왼쪽뿐입니다. 그러니까 일을 잘못한 게 아니라 오른쪽을 못 들은 상태로 일을 시작한 겁니다.
먼저 있던 사람은 왜 이유를 말해주지 않을까요
여기서 한 가지는 짚고 가는 게 좋겠습니다. 먼저 있던 사람들이 일부러 감춘 게 아니라는 점이요.
그 사람들은 목적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으면 그게 설명이 필요한 정보라는 감각 자체가 사라집니다. 아는 사람은 모르는 상태를 상상하기 어렵다는 건 오래 연구된 문제인데, 콜린 캐머러와 조지 로웬스타인, 마틴 웨버가 1989년 『Journal of Political Economy』에 발표한 「지식의 저주」 실험이 그 출발점이었습니다. 더 많이 아는 쪽은 상대도 그만큼 알 거라고 계속 넘겨짚고, 그걸 알면서도 잘 못 고칩니다.
원래는 경제 실험에서 나온 결과라 회사 사무실 이야기와 그대로 같지는 않습니다. 다만 구조는 똑같습니다. 목적을 아는 사람이 그걸 굳이 말하지 않는 건 인색해서가 아니라, 말할 게 있다는 걸 못 느껴서입니다.
그래서 새로 온 사람 쪽에는 규칙만 도착합니다. 물어볼 생각도 잘 안 드는 게, 문장이 이미 완결돼 있어서 모르는 부분이 있다는 감이 안 오거든요. 그러다 사고가 난 다음에야 "그건 원래 이런 거였는데"라는 말이 나오죠.
그래서 이 상황의 책임을 어느 한쪽에 몰아주는 건 별 도움이 안 됩니다. 대신 그 자리에서 목적을 꺼내오는 방법이 있으면 됩니다.
처음 하는 일에서 규칙을 들으면 한 가지만 물어봅니다
문장 하나면 됩니다.
"저 이거 처음이라 그러는데, 이거 원래 뭘 하려고 하는 거예요?"
앞에 "처음이라"를 꼭 붙이시는 게 좋습니다. 그거 하나로 따지는 말이 아니라 배우려는 말이 되거든요. 같은 질문이라도 "왜 이렇게 해요?"라고 하면 규칙을 심사하는 것처럼 들리고, "처음이라 그러는데"가 앞에 붙으면 그냥 모르는 걸 묻는 사람이 됩니다.
이 질문이 좋은 건 대답이 뭐가 나와도 손해를 안 본다는 점입니다.
답이 돌아오면 그 자리에서 눈치가 생깁니다. 고수를 사기 전에 다 같이 먹으려고 한다는 걸 알게 되는 거죠. 원래 눈치라고 부르는 건 이 정보를 가진 상태를 말합니다. 감각이 좋은 게 아니라 목적을 아는 겁니다.
답이 안 돌아오면 그건 나만 모르는 게 아닙니다. 아무도 이유를 모르는 규칙이라는 뜻이에요. 그럼 하던 대로 하시면 되고, 그 규칙 때문에 나중에 문제가 생겨도 그건 개인이 감당할 몫이 아닙니다.
상황별로 그대로 쓰는 확인 문장
"원래 뭘 하려는 거예요"를 그대로 쓰기 어색한 자리도 있습니다. 상황별로 조금씩 바꿔 쓰시면 됩니다.
| 이런 자리에서 | 이렇게 물어봅니다 |
|---|---|
| 처음 맡은 정기 업무 | "제가 처음이라 그러는데, 이 보고서는 누가 어떤 걸 보시는 건가요?" |
| 형식이 정해진 문서 | "이 양식에서 제일 중요하게 보시는 항목이 어느 쪽일까요?" |
| 마감이 정해진 일 | "이 날짜가 그 뒤에 뭐가 걸려 있어서 잡힌 건지 여쭤봐도 될까요?" |
| 참조·공유 규칙 | "이건 어느 분들까지 알고 계셔야 하는 일인가요?" |
| 하지 말라는 말을 들었을 때 | "제가 뭘 놓치고 있는지 하나만 알려주시면 그대로 하겠습니다." |
| 선배마다 방식이 다를 때 | "두 분 방식이 달라서요, 각각 챙기시는 게 뭔지 알면 제가 맞출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 회의에서 처음 듣는 절차 | "이 절차가 원래 어떤 문제 때문에 생긴 건지 아시는 분 계실까요?" |
| 인수인계 받을 때 | "여기서 예전에 사고 났던 게 있으면 그것부터 알려주세요." |
전부 따지는 말이 아니라 확인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 질문들은 대개 상대가 좋아합니다. 자기가 아는 걸 말할 기회니까요.
그럼 매번 다 물어봐야 하나요
그러면 피곤한 사람이 됩니다. 물어보는 것 자체가 새로운 눈치가 되기도 하고요.
기준은 하나면 충분합니다. 내가 이걸 처음 해보는 일일 때만 물으시면 됩니다. 두 번째부터는 이미 한 번 해봤으니 목적이 어느 정도 보이고, 안 보이면 그때 물어도 늦지 않습니다.
반대로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물어봤는데 "그냥 하라는 대로 해"라는 답만 돌아오는 자리요. 그때는 같은 질문을 반복하지 마시고 한 줄만 적어두시는 게 낫습니다. 언제 누구에게 무엇을 확인했는지요. 나중에 결과가 어긋났을 때 "이때 여쭤봤었다"고 말할 수 있으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규칙을 알려주는 쪽이라면 문장 하나만 붙이면 됩니다
반대편에 서 계신 분들도 있을 겁니다. 팀에 사람을 새로 받았고, 우리 팀 방식을 알려줘야 하는 자리요.
여기서 할 일은 규칙을 더 자세히 쓰는 게 아닙니다. 자세히 쓸수록 방법만 길어지거든요. 대신 규칙 뒤에 목적 한 줄을 붙이면 됩니다. "각자 하나씩 사 오세요" 뒤에 "다 같이 비벼 먹을 거라서요"만 붙었어도 고수는 안 왔을 겁니다.
이건 친절의 문제가 아니라 일이 되게 하는 문제입니다. 사람들이 왜 하는지 알고 움직일 때 판단이 생기고, 그래야 규칙에 안 적힌 상황에서도 원래 하려던 걸 지켜냅니다. 9WAY가 조직에서 몰입이 막힌 자리를 볼 때 제일 먼저 확인하는 것도 이 대목입니다. 권한이나 자율보다 앞에 있는 게 왜 하는지 아는 상태거든요. 왜 하는지 모른 채 알아서 하라는 말을 들었을 때 자율이 아니라 부담으로 느껴지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시킨 대로 했는데 눈치 없다는 말을 들으셨다면
여러분이 못 알아챈 게 아닙니다. 그 규칙이 왜 있는지를 아무도 말해준 적이 없는 겁니다.
새 회사, 새 팀, 새 업무에서 이런 일이 유독 자주 생기는 것도 그래서입니다.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목적이 빠진 문장만 받아 들고 시작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 상태가 길어지면 한 번 들은 말을 혼자 규칙으로 만들어 스스로 움직임을 줄이게 됩니다.
그러니까 지금 맡은 일 중에 왜 하는지 설명을 못 들은 게 하나 떠오르셨다면, 그 일부터 물어보시면 됩니다. 줄임말은 모르면 물어보면 되는데, 안 물어보면 계속 나만 모르는 채로 지나가거든요.
일은 규칙을 지켜서 되는 게 아니라, 그 규칙이 왜 있는지 알고 나서부터 됩니다.
사람마다 규칙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다릅니다. 적힌 대로 정확히 지키는 게 편한 사람이 있고, 이유를 알아야 움직여지는 사람이 있죠. 내가 어느 쪽인지 궁금하시면 9WAY 강점 진단이 참고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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