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가 계속 "다시 해와"라고 할 때 — 어디까지 맞는지부터 물어보세요
퇴근 20분 전이었습니다. 옆 팀 대리가 사무실이 다 들리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니까 처음부터 제대로 말씀을 해주셨어야죠!"
그러고는 가방만 들고 나갔습니다. 노트북은 켜진 채로 두고요. 그날 아침부터 부장이 대리를 자리로 불러 다시 해오라고 했고, 고쳐 가면 또 다시, 또 가져가면 또 다시였다고 합니다. 직장인 커뮤니티에 이 장면을 적은 사람은 그 부장 밑에서 일해본 사람들 말도 덧붙였습니다. 지시가 계속 바뀌는데 나중에는 자기가 언제 그랬냐고 한다고요.
이 글을 읽는 분 중에도 비슷한 하루를 보낸 분이 있을 겁니다. 소리까지는 안 질렀어도, 저녁에 모니터 앞에서 "오늘 나 뭐 한 거지" 싶었던 날이요.
하루 종일 "다시 해와"를 들으면 왜 이렇게 지칠까요?
하루 종일 고쳤는데 맞은 데가 어디인지 한 번도 듣지 못해서입니다. 혼난 횟수 때문이 아닙니다.
사람은 꾸중을 여러 번 들어도 생각보다 잘 버팁니다. 버티기 어려운 건 고친 것 중에 확정된 게 하나도 없는 상태입니다. 아침에 한 수정도, 점심에 한 수정도, 저녁에 한 수정도 전부 "아직 아님"으로 남으면 열 번을 고쳐도 손에 쥔 게 없습니다.
직장인이 어떤 조건에서 일에 몰입하는지 오래 연구해 오면서, 제가 가장 먼저 확인하라고 권하는 게 성취입니다. 성취는 기대한 결과와 실제 결과를 나란히 놓고 얼마나 나아갔는지 확인하는 경험이고, 목표와 완료 기준이 흐릿하면 아무리 애써도 이 경험이 생기지 않습니다. "다 다시"라는 말은 그 나란히 놓을 기준을 통째로 지워버립니다.
바깥 연구도 같은 쪽을 가리킵니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테레사 애머빌 교수와 스티븐 크레이머가 7개 회사 238명의 업무 일지 약 1만 2천 건을 분석했더니, 일하는 사람의 기분과 의욕이 가장 좋았던 날의 공통점은 의미 있는 일에서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아간 날이었습니다(『The Progress Principle』, 2011). 반대로 막히고 제자리인 날이 가장 나빴고요. 이 부분은 성취감 있는 일과 없는 일의 차이에서 더 자세히 다뤘습니다.
"다 다시"라는 말이 지우는 것

수정 지시를 받을 때 사람 머릿속에서는 두 가지 일이 동시에 벌어집니다. 무엇을 고칠지 찾고, 무엇은 건드리지 말지 정합니다. 두 번째가 없으면 매번 처음부터 추측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런 일이 생깁니다. 두 번째 반려에서 목차를 바꿨더니, 세 번째 반려에서 "처음 목차가 나았는데"라는 말을 듣습니다. 받는 쪽은 지시가 바뀌었다고 느끼고, 시킨 쪽은 처음부터 목차를 문제 삼은 적이 없다고 기억합니다. 둘 다 자기 기억대로 말하는 겁니다. 맞다고 확인된 부분이 말로 남지 않았을 뿐입니다.
확정된 부분이 한 곳이라도 있으면 사정이 달라집니다. 다음 수정은 그 위에서 시작하고, 고치는 범위가 좁아지고, 같은 열 번을 고쳐도 한 번 한 번이 앞으로 가는 일이 됩니다.
다시 해오라는 말을 들었을 때 뭐라고 물어야 할까요?
딱 한 문장이면 됩니다.
"어디까지는 맞고, 어디부터 다시 하면 될까요?"
상대가 "다 다시"라고 하면 한 번만 더 좁힙니다.
"그럼 방향은 맞고, 형식만 바꾸면 될까요?"
이 두 질문은 상대가 머릿속에 가진 기준을 꺼내 달라는 요청입니다. 상대 입장에서도 다음 검토 시간이 줄어듭니다. 대부분의 "다 다시"는 막상 물어보면 표 하나, 순서 하나, 결론 문장 하나로 좁혀집니다. 정말로 전부 다시라면 그것도 알게 됩니다. 어느 쪽이든 추측으로 하루를 쓰지 않게 됩니다.
상황별로 그대로 쓰는 되묻는 문장
아래는 다시 해오라는 말을 들은 그 자리에서 쓰는 문장입니다. 다 외울 필요는 없고, 내가 자주 겪는 상황 두세 줄만 메모장에 넣어두면 됩니다.
| 이럴 때 | 이렇게 묻습니다 |
|---|---|
| 처음 반려됐을 때 | "어디까지는 맞고, 어디부터 다시 하면 될까요?" |
| "다 다시"라고 할 때 | "그럼 방향은 맞고, 형식만 바꾸면 될까요?" |
| "느낌이 아니야"처럼 이유가 흐릴 때 | "읽으시면서 처음 걸린 곳이 어디였는지만 짚어주시겠어요?" |
| 무엇을 바꿔야 할지 감이 안 올 때 | "방향·순서·숫자·표현 중에 어디가 제일 걸리세요?" |
| 기준 자체를 모르겠을 때 | "이 문서 보시는 분이 제일 먼저 확인하려는 게 뭘까요?" |
| 세 번째 이상 반려됐을 때 | "제가 계속 같은 데서 헤매는 것 같아서요. 잘된 예시가 있으면 하나만 보여주실 수 있을까요?" |
| 지난번 말과 달라진 것 같을 때 | "지난번에 목차는 이대로 가자고 하셔서 그 부분은 두고 고쳤는데, 목차도 바꾸는 게 맞을까요?" |
| 고친 걸 다시 가져갈 때 | "지난번에 맞다고 하신 부분은 그대로 두고, 여기만 바꿨습니다." |
| 방향이 두 가지로 갈릴 때 | "A안과 B안 두 가지로 만들어봤는데, 어느 쪽이 가까우세요?" |
| 마감이 급할 때 | "오늘까지 꼭 바뀌어야 하는 게 어디까지인지 알려주시면 거기부터 하겠습니다." |
맨 마지막 두 줄은 특히 쓸모가 있습니다. 시안을 둘로 만들어 고르게 하면 상대도 말로 설명하기 어려웠던 기준을 고르는 걸로 보여줄 수 있고, 마감 질문은 "전부 다시"를 "오늘 할 것"과 "나중에 할 것"으로 나눠줍니다.
이 질문이 따지는 말로 들리지 않게 하려면
같은 문장도 말투에 따라 "그걸 내가 일일이 말해줘야 해?"라는 반응이 돌아올 수 있습니다. 세 가지만 지키면 대부분 괜찮습니다.
- 먼저 받고 묻습니다. "네, 다시 보겠습니다. 그런데 하나만 여쭤볼게요"로 시작하면 질문이 다음 수정을 준비하는 말로 들립니다.
- 한 번에 하나만 묻습니다. 질문을 세 개 연달아 던지면 심문처럼 들립니다. 범위를 좁히는 질문 하나면 충분합니다.
- 들은 걸 짧게 남깁니다. 자리에 돌아와서 "말씀하신 대로 목차는 유지하고 결론 부분만 숫자 중심으로 바꾸겠습니다" 한 줄을 메신저로 보냅니다. 서로 기억이 달라지는 걸 막는 확인입니다. 따지려고 증거를 쌓는 일과는 결이 다릅니다.
반대쪽 사정도 짚고 가겠습니다. 일 중에는 직접 보면서 기준이 정해지는 일이 있습니다. 새 기획안이나 처음 해보는 형식의 보고는 시키는 사람도 결과물을 보기 전까지 무엇이 맞는지 모를 때가 많습니다. 이럴 때 "처음부터 정확히 말해달라"고 요구하면 서로 답답해집니다. 그때는 완성본을 들고 가지 말고, 절반도 안 만든 초안이나 방향이 다른 시안 두 개를 일찍 보여주고 고르게 하는 편이 빠릅니다.
다만 질문을 하고 확인 메시지까지 남겼는데도 확정된 부분이 매번 뒤집히고 "내가 언제 그랬냐"가 반복된다면, 그건 질문 하나로 풀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겁니다. 그때는 혼자 버티지 말고 남겨둔 확인 내용을 가지고 팀장이나 믿을 만한 선배와 일하는 방식을 상의할 때입니다.
시키는 자리라면 "여기까진 맞아"를 먼저 말해주세요

다시 시켜야 하는 날은 있습니다. 결과물이 기준에 못 미치면 돌려보내는 게 리더의 일입니다. 달라져야 할 건 돌려보내는 순서입니다.
맞은 곳을 먼저 말하고, 남은 곳을 말합니다. 맞은 곳만 말하고 남은 곳을 흐리면 기준이 안 전해지고, 남은 곳만 말하면 오늘 한 일이 전부 0이 됩니다. 둘을 한 번에 같이 말해야 팀원이 다음 수정을 어디서 시작할지 압니다.
- "목차랑 첫 장 숫자는 이대로 가자. 결론만 한 문장으로 줄여서 다시 보자."
- "방향은 맞아. 고객 입장에서 읽히게 순서만 바꿔줘."
- "여기까지는 확정이야. 이 아래부터 다시 보자."
이 한마디에 드는 시간은 10초입니다. 그런데 이 10초가 있으면 팀원은 오늘 고친 것 중에 남은 게 있다고 느끼고, 같은 수정도 앞으로 가는 일로 받아들입니다. 퇴근 20분 전에 가방을 드는 일은 대개 그 10초가 하루 종일 한 번도 없었던 날에 일어납니다.
정리하면
- 하루 종일 고쳤는데 지치는 건 혼난 횟수보다 확정된 부분을 한 번도 못 들었기 때문입니다.
- 성취는 기대한 결과와 실제 결과를 나란히 놓고 나아간 만큼을 확인하는 경험입니다. "다 다시"는 그 기준을 지웁니다.
- 다시 해오라는 말을 들으면 묻습니다. "어디까지는 맞고, 어디부터 다시 하면 될까요?"
- "다 다시"라고 하면 한 번 더 좁힙니다. "그럼 방향은 맞고, 형식만 바꾸면 될까요?"
- 들은 내용은 한 줄로 남기고, 보면서 정해지는 일은 초안이나 시안 두 개로 일찍 고르게 합니다.
- 시키는 자리라면 돌려보낼 때 "여기까진 맞아"를 먼저 말합니다.
오늘 퇴근 전에 한 줄만 적어보셔도 좋습니다. "오늘 고친 것 중에 확정된 부분은 어디인가." 여러 번 고쳐도 무너지지 않고 앞으로 가는 방식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른데, 내가 어떤 방식으로 일할 때 힘이 나는지 궁금하다면 9WAY 강점 진단으로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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