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원이 주도성이 없다고 느껴질 때 — 챙기기 전에 적어 볼 세 가지

팀원이 주도성이 없다고 느껴질 때 — 챙기기 전에 적어 볼 세 가지

군사학교에 다닐 때 제가 정말 존경하던 교관님이 계셨습니다. 아는 것도 많고, 리더십을 말할 때면 깊이가 있었고, 성품도 훌륭한 분이었습니다.

나중에 그분이 제가 있던 부대의 지휘관으로 오셨습니다. 정말 기뻤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위병소의 작은 일부터 생활관의 사소한 문제까지 전부 직접 살피셨습니다. 처음엔 다들 솔선수범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달라진 게 보였습니다. 간부들이 무언가를 판단하기 전에 지휘관 뜻부터 확인하기 시작했습니다. 지휘관이 많이 움직일수록 부하들은 덜 움직였습니다.

그분은 실수를 막고 싶었을 뿐입니다. 저도 나중에 리더가 되고 나서 똑같이 했습니다. 제가 하면 더 빠를 것 같았고, 도와주는 게 솔선수범이라고 믿었거든요.

팀원이 뭐 하나 할 때마다 물어보러 와서 "얘는 왜 이렇게 주도성이 없지?" 싶은 팀장님이라면, 이 이야기가 남 얘기 같지 않으실 겁니다.

팀원이 매번 물어보러 오는 건 주도성이 없어서일까요

대개는 팀장 취향을 배운 결과입니다.

팀장이 보고서 문장 하나, 일하는 순서, 고객에게 연락하는 방법까지 다 정해 주면 팀원은 그 일을 배우는 동시에 한 가지를 더 배웁니다. 이 팀에서는 팀장님 마음에 드는 게 정답이라는 것. 그다음부터 팀원은 일을 시작하기 전에 "이게 고객한테 맞나?"보다 "팀장님이 이걸 좋아할까?"를 먼저 생각합니다.

그러면 이런 순서가 돌기 시작합니다.

  1. 팀원이 팀장 마음을 모르니 물어보러 온다.
  2. 팀장은 "얘는 주도성이 없네" 하고 더 자세히 알려 준다.
  3. 자세히 알려 줄수록 팀원은 스스로 정하지 않고 시킬 때까지 기다린다.
  4. 기다리는 팀원을 보며 팀장은 더 챙긴다.

팀장은 부지런해지고 팀원은 조용해집니다. 제가 부대에서 본 장면도 정확히 이 순서였습니다.

팀장이 자기 일을 하는 사이 팀원이 노트북을 들고 옆에 서서 확인받을 차례를 기다리고, 뒤에서 또 한 사람이 서류를 들고 온다 — 팀장이 다 정해 주는 팀에서는 팀원이 판단보다 확인을 먼저 배운다

팀장은 왜 이렇게까지 챙기게 될까요

불안해서입니다. 통제하고 싶어서라기보다, 무언가를 막고 싶어서입니다.

팀장의 불안은 대개 이 세 가지입니다.

  • 일정이 늦어져서 고객을 놓칠까 봐
  • 사고가 나면 그 책임을 혼자 지게 될까 봐
  • 상사한테 무능해 보일까 봐

셋 다 이상한 걱정이 아닙니다. 팀장이라면 누구나 갖는 걱정이고, 그래서 챙기는 마음 자체는 선한 마음입니다.

문제는 이 걱정이 팀장 머릿속에만 있다는 겁니다. 팀원은 팀장이 무엇을 무서워하는지 모릅니다. 어떻게 되면 잘된 건지도 들은 적이 없고, 어디까지 자기가 정해도 되는지도 모릅니다. 모르니까 물어볼 수밖에 없습니다. 팀장 입장에서는 주도성이 없어 보이지만, 팀원 입장에서는 정할 기준이 없는 겁니다.

일 잘하는 팀장은 무엇을 정해 주고, 무엇을 맡기나요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는 분명하게 정해 주고, 그 안에서 어떻게 할지는 맡깁니다.

구글은 2008년부터 사내 데이터를 분석해 좋은 관리자의 행동을 추려 냈습니다(Project Oxygen). 그중 하나가 "팀에 권한을 주고, 세세하게 간섭하지 않는다"였습니다(Garvin, Harvard Business Review, 2013). 구글의 설명도 같은 방향입니다. 기대하는 결과를 분명히 해 두고, 방법은 팀원이 정하게 둡니다.

군대에도 같은 원칙이 있습니다. 임무형 지휘라고 부르는데, 상급자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와 그 일을 하는 목적(지휘관의 의도)을 분명히 전하고, 어떻게 할지는 세세하게 지시하지 않습니다. 우리 육군도 1999년에 이 방식을 지휘 개념으로 채택했습니다. 의도가 분명하면 현장에서 상황이 바뀌어도 부하가 스스로 판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모셨던 지휘관님은 그 반대로 하셨던 셈입니다. 의도를 말하는 대신 모든 일을 직접 살폈고, 그래서 간부들은 의도 대신 지휘관의 표정을 읽게 됐습니다.

주도성이 없다고 정하기 전에 적어 볼 세 가지

그래서 팀원을 탓하기 전에, 팀장 머릿속에만 있는 세 가지를 종이에 먼저 적어 보시면 좋겠습니다. 팀원에게 고객 제안서를 맡긴다고 해 보겠습니다.

① 내가 무서워하는 실패는 무엇인가 이 일에서 절대 일어나면 안 되는 일 하나입니다. 제안서라면 마감을 넘기는 겁니다.

② 어떻게 되면 잘된 건가 결과를 볼 때 무엇이 들어가 있으면 합격인지입니다. 제안서라면 고객이 꼭 결정해야 할 쟁점과, 예산·일정의 한계가 분명히 들어가 있으면 됩니다.

③ "이건 네가 정해도 돼"라고 아직 넘기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팀원이 나에게 묻지 않고 정해도 되는 것입니다. 제안서라면 문장 표현과 목차 구성은 담당자가 정해도 됩니다.

이렇게 적어 보면 알게 됩니다. 제가 챙기던 것 대부분은 ③에 들어갈 것들이었습니다. 문장 하나, 순서 하나를 고쳐 주는 동안 정작 ①과 ②는 한 번도 말해 준 적이 없었습니다.

다른 일에도 똑같이 쓸 수 있습니다. 지금 맡기려는 일과 가장 가까운 줄을 골라 보세요.

맡기는 일 ① 무서워하는 실패 ② 잘된 상태 ③ 네가 정해도 되는 것
고객 제안서 마감을 넘기는 것 고객이 결정할 쟁점과 예산·일정 한계가 들어가 있다 문장 표현, 목차 구성
주간 업무 보고 문제가 생긴 걸 늦게 아는 것 막힌 일과 도움이 필요한 부분이 맨 위에 있다 양식, 쓰는 순서, 분량
고객 불만 응대 사과 없이 규정만 말해 고객이 더 화나는 것 고객이 다음에 무엇이 언제 되는지 안다 사과 문장, 보상 제안 순서(정해 둔 한도 안)
사내 행사 준비 당일에 장소·장비가 빠지는 것 참석자가 끝나고 다음에 할 일을 하나 들고 간다 진행 순서, 간식, 초대 문구
신규 거래처 견적 우리 원가 아래로 견적이 나가는 것 최저선 위에서 상대가 비교할 선택지가 둘 이상 있다 옵션 구성, 설명 방식
채용 공고 작성 실제로 하는 일과 다른 내용이 나가는 것 지원자가 첫 석 달에 할 일을 알 수 있다 문장 톤, 복지 항목 배치

적은 다음에는 어떻게 말해 주나요

적은 걸 팀원에게 그대로 말해 주면 됩니다. 순서는 이렇습니다.

"이번 제안서에서 제가 제일 걱정하는 건 마감이에요. 금요일은 꼭 지켜 주세요. 고객이 결정할 쟁점 세 개랑 예산 범위가 들어가 있으면 잘된 거예요. 문장이랑 목차는 ○○ 님이 정해도 돼요. 저한테 안 물어보셔도 돼요."

이렇게 말해 주면 팀원도 알게 됩니다. 무엇은 꼭 지켜야 하고, 어디까지는 자기가 정해도 되는지요. 그다음부터 오는 질문은 달라집니다. "이 문장 괜찮을까요?" 대신 "예산 범위를 두 가지로 나눠서 넣어도 될까요?" 같은, ①과 ②에 걸린 질문이 옵니다. 팀장이 답해야 할 질문만 남는 겁니다.

그래도 습관처럼 ③에 해당하는 걸 물어 오면, 바로 답하지 말고 한 번 되물어 보세요. "○○ 님은 어떻게 하려고 했어요?" 대개는 이미 괜찮은 답을 갖고 있습니다. 그 답이 ①과 ②를 지키고 있다면 "그렇게 하세요" 한마디면 됩니다.

작은 회의실에서 팀장이 종이 한 장을 앞에 두고 설명하고, 팀원은 메모하며 듣는다 — 팀장 머릿속에만 있던 기준을 말로 넘겨주는 1:1 대화

맡겼다가 일이 틀어지면 어떡하나요

맡긴다고 손을 놓는 건 아닙니다. 두 가지를 같이 정해 두면 됩니다.

  • 중간에 한 번 볼 때를 미리 정합니다. "수요일 오후에 목차만 한 번 같이 봐요." 팀원은 언제 확인받는지 알고, 팀장은 그 사이 불안을 참을 근거가 생깁니다.
  • 경험이 적은 팀원이라면 ③을 좁게, ①과 ②를 더 자세히 줍니다. 신입에게 처음부터 목차까지 맡길 필요는 없습니다. 이번엔 문장 표현만 맡기고, 다음번엔 목차까지 넘기는 식으로 넓혀 가면 됩니다.

그리고 틀어졌을 때는 ①·②·③ 중 어디가 비어 있었는지를 먼저 봅니다. 대개는 ②의 기준이 서로 달랐던 경우가 많습니다. 팀원이 못해서 틀어지는 경우는 생각보다 적습니다. 그러면 다음에 ②를 더 분명하게 적으면 됩니다. 팀원 탓으로 결론을 내리면 다음번엔 팀장이 또 전부 챙기게 되고, 이 글 처음의 순서가 다시 돌아갑니다.

그럼 부지런한 팀장은 무엇을 하면 되나요

부지런한 건 그대로 두셔도 됩니다. 그 부지런함을 쓰는 곳만 바꾸면 됩니다.

문장 하나를 고쳐 주는 데 쓰던 시간을, 이 세 가지를 정하고 말해 주는 데 씁니다. 세 가지를 정하는 데 쓰이지 않은 부지런함은 결국 팀원을 힘들게 하는 마이크로매니지먼트가 됩니다. 같은 부지런함이 세 가지를 정하는 데 쓰이면, 팀원이 스스로 움직이게 만드는 힘이 됩니다.

정리하면

  • 팀장이 부지런하게 챙길수록 팀원이 덜 움직이는 팀이 있습니다. 팀원이 일보다 팀장 취향을 먼저 배우기 때문입니다.
  • 팀장이 챙기는 이유는 불안입니다. 일정, 책임, 상사의 눈. 그 불안은 선한 마음에서 옵니다.
  • 문제는 그 불안과 기준이 팀장 머릿속에만 있다는 것입니다. 팀원은 몰라서 묻습니다.
  • 주도성이 없다고 정하기 전에 세 가지를 적습니다. ① 내가 무서워하는 실패 ② 잘된 상태의 기준 ③ 팀원이 정해도 되는 것.
  • 적은 걸 그대로 말해 줍니다. 중간에 한 번 볼 때도 같이 정합니다.
  • 경험이 적은 팀원에게는 ③을 좁게 주고 조금씩 넓힙니다.
  • 부지런함은 그대로 두고, 쓰는 곳을 세 가지로 옮깁니다.

이번 주에 팀원에게 맡길 일 하나를 골라, 말하기 전에 세 줄만 먼저 적어 보세요. 적다 보면 그동안 팀원에게 말해 주지 않았던 게 무엇인지 팀장이 먼저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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