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연봉 한마디에 흔들렸다면 — 내가 뭐로 만족하는지 한 줄로 찾는 법

남의 연봉 한마디에 흔들렸다면 — 내가 뭐로 만족하는지 한 줄로 찾는 법

"그 돈으로 생활이 돼?"

대학 동기 모임에서 이 말을 들은 서른네 살 직장인이 있습니다. 지금 다니는 회사에 만족하던 분인데, 그날 이후로 대기업 채용공고를 열었다 닫았다 했다고 합니다.

이분 실수령은 280만 원 정도입니다. 많은 돈이 아니라는 건 본인도 잘 압니다. 그래도 빚은 없고, 매달 적금을 붓고, 남는 돈으로 취미도 즐기면서 나름 만족하며 살았습니다.

그날 모임은 어느새 다들 자기 연봉을 하나씩 말하는 분위기가 됐습니다. 이분도 얼버무리듯 말했는데, 이름만 대면 다 아는 대기업에 다니는 동기가 놀란 얼굴로 그 말을 했습니다. 쪼들려서 살기 엄청 힘들지 않냐는 말까지 붙여서요. 이분은 웃으면서 받아쳤습니다.

"나 빚도 없고 먹고 싶은 거 잘 먹으면서 살고 있으니까 내 걱정은 안 해도 된다."

그렇게 받아치고도 기분이 꼬여서, 핑계를 대고 일찍 일어났다고 합니다. 직장인 커뮤니티에 남긴 글에는 그날 기분이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저는 제 삶에 아무 불만 없이 평화롭게 잘 살고 있었는데 남의 말 한마디에 갑자기 제 인생이 엄청 구질구질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고요."

모임 전날과 다음 날, 무엇이 바뀌었을까요

바뀐 건 하나입니다. 이분이 자기 삶을 무엇에 대 보느냐입니다.

모임 전날 모임 다음 날
실수령 280만 원 정도 280만 원 정도
빚 없음 없음
적금 매달 붓는 중 매달 붓는 중
취미 즐기는 중 즐기는 중
내 삶을 대 보는 것 빚 없이 먹고 싶은 거 먹고 사는가 동기들 연봉

통장도 생활도 그대로입니다. 마지막 줄만 바뀌었습니다. 전에는 빚 없이 잘 먹고 사는 걸로 자기 삶을 봤는데, 그날부터는 동기 연봉에 대 보게 된 겁니다.

280이 많은 돈이 아니라는 것도 이분은 그날 처음 안 게 아닙니다. 그날 새로 안 사실은 따로 있었습니다. 그 모임에서 자기 월급이 제일 낮다는 것이었습니다.

남의 연봉을 알게 되면 왜 이렇게 흔들릴까요

사람은 금액보다 순위에 더 크게 흔들립니다. 이 장면과 거의 같은 상황을 실험한 연구가 있습니다.

2021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데이비드 카드와 동료 연구진은 캘리포니아대학교 직원 가운데 무작위로 고른 사람들에게, 직원 연봉을 누구나 찾아볼 수 있는 웹사이트가 새로 생겼다고 알려 줬습니다. 그리고 직원들에게 직장 만족도와 이직 생각을 물었습니다(Card 외, 「Inequality at Work: The Effect of Peer Salaries on Job Satisfaction」, American Economic Review, 2012).

달라진 건 아래쪽 사람들뿐이었습니다. 같은 부서·같은 직종 안에서 연봉이 중간보다 낮은 사람들은 연봉 만족과 직장 만족이 모두 떨어졌고, 새 일자리를 알아볼 가능성이 뚜렷하게 올라갔습니다. 중간보다 높은 사람들은 아무 변화가 없었습니다. 연구진은 금액 차이보다 순위 차이가 더 크게 작용한다고 정리했습니다.

여기서 두 가지가 보입니다. 남의 연봉을 알게 됐다고 만족이 올라간 사람은 없었습니다. 아래에 있던 사람들의 만족만 깎였습니다. 그리고 아래에 있다는 걸 안 사람들 사이에서는 새 일자리를 알아보겠다는 사람이 늘었습니다. 모임 다음 날부터 채용공고를 연 이분과 똑같습니다.

그러니 그날 흔들린 건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다만 그날 연 공고가 내 생활이 모자라서 연 것인지, 모임에서 순위를 알게 돼서 연 것인지는 한 번 나눠 봐야 합니다.

밤 원룸 책상에서 흐릿한 채용 사이트 화면을 띄운 노트북 앞에 턱을 괴고 앉은 남자 — 연봉 순위가 낮다는 걸 알게 된 뒤 새 일자리를 알아보고 싶어지는 건 연구에서도 나온 반응이다

그동안의 만족은 착각이었을까요

이런 날에는 보통 "내가 그동안 착각하고 살았나" 싶어집니다. 남들은 저만큼 버는데 나만 모르고 만족하고 있었나 싶은 거죠.

그동안 만족하며 산 건 진짜였습니다. 근거는 이분이 그날 모임에서 받아친 말에 이미 있습니다. "빚도 없고 먹고 싶은 거 잘 먹으면서 살고 있으니까." 이분은 자기가 무엇으로 만족하며 사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동기의 말을 듣자마자 그 말이 나왔으니까요. 평소에 그 기준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바로 나온 겁니다.

그런데 그날 밤 그 기준이 동기들 연봉에 가려졌습니다. 자기가 방금 한 말을 자기가 잊어버린 셈입니다. 그래서 흔들린 날에는 남의 숫자를 보기 전에 내 기준부터 다시 꺼내 봐야 합니다. 그 기준을 한 줄로 적어 두면 꺼내기가 쉽습니다.

내가 뭐로 만족하며 사는지 한 줄로 찾는 법

월급 숫자는 빼고 지난 한 달 실제로 누린 것을 적은 다음, 그중 없어지면 싫은 것만 남겨 "나는 ○○면 잘 사는 거다" 한 문장으로 씁니다. 한 번 앉아서 끝낼 수 있습니다.

  1. 지난 한 달 동안 월급으로 실제로 누린 것을 다섯 개 적습니다. 금액은 쓰지 않고 생활로 씁니다. "카드값을 다 갚았다", "적금을 한 번도 안 빼먹었다", "토요일 오전마다 테니스를 쳤다", "먹고 싶은 걸 가격 안 보고 시켰다", "저녁 7시 전에 집에 왔다" 같은 식입니다.
  2. 하나씩 지워 봅니다. 연봉이 오르는 대신 이게 없어진다면 괜찮은지 묻습니다. "그건 싫다" 싶은 것만 남깁니다. 한두 개면 충분합니다.
  3. 남은 것으로 한 문장을 씁니다. "나는 ○○면 잘 사는 거다." 이분이라면 "나는 빚 없이 먹고 싶은 거 먹고 살면 잘 사는 거다"쯤 될 겁니다. 이분은 이 문장을 이미 동기 앞에서 말했습니다.
  4. 남의 숫자는 넣지 않습니다. "동기만큼", "평균 연봉 이상"처럼 남과 견주는 말이 들어가면 다음 모임에서 또 흔들립니다. 내가 누리는 것만 씁니다.
  5. 휴대폰 메모 맨 위에 둡니다. 연봉 얘기를 들은 날, 공고를 열기 전에 이 한 줄부터 엽니다. 그리고 오늘 이 한 줄에서 달라진 게 있는지 봅니다.

대부분은 달라진 게 없을 겁니다. 그날의 이분처럼요. 그러면 그날 나를 흔든 건 모임에서 들은 숫자입니다. 내 삶은 그대로입니다.

주말 오전 식탁에서 작은 수첩에 펜으로 한 줄을 적는 손 — 남의 숫자를 빼고 내가 실제로 누리는 것으로 "나는 ○○면 잘 사는 거다" 한 문장을 쓴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한 줄을 쓸까요

누리는 것이 다르면 한 줄도 다릅니다. 지난 한 달을 떠올리면서 내 생활과 가까운 줄부터 보세요.

실제로 누리는 것 한 줄로 쓰면
빚이 없고 카드값을 다 갚는다 나는 빚 없이 번 만큼 쓰고 살면 잘 사는 거다
매달 적금을 붓는다 나는 매달 조금이라도 모으고 있으면 잘 사는 거다
먹고 싶은 걸 먹는다 나는 먹고 싶은 걸 가격 안 보고 시킬 수 있으면 잘 사는 거다
저녁 시간이 있다 나는 저녁 7시 전에 집에 와서 내 시간이 있으면 잘 사는 거다
주말마다 취미를 한다 나는 주말에 좋아하는 걸 할 돈과 시간이 있으면 잘 사는 거다
가족과 저녁을 먹는다 나는 아이가 잠들기 전에 집에 들어가면 잘 사는 거다
출퇴근이 짧다 나는 출근길이 30분 안쪽이면 잘 사는 거다
회사 사람이 편하다 나는 출근해서 피하고 싶은 사람이 없으면 잘 사는 거다
일을 내 방식대로 한다 나는 맡은 일을 내 방식대로 끝낼 수 있으면 잘 사는 거다
몸이 괜찮다 나는 잠을 충분히 자고 아픈 데가 없으면 잘 사는 거다
부모님을 챙긴다 나는 부모님께 가끔 용돈을 드릴 여유가 있으면 잘 사는 거다

표의 문장을 그대로 가져와도 됩니다. 다만 내가 지난 한 달 실제로 누린 것에서 나온 문장이어야 흔들린 날 힘이 있습니다. 남의 한 줄을 빌려 오면 그것도 결국 남의 기준이 됩니다.

한 줄로 봐도 옮기고 싶다면

이 한 줄은 옮길지 말지를 내 기준으로 정하려고 씁니다. 이직을 막으려는 문장은 아닙니다. 연봉이 정말 모자라서 흔들리는 때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 둘은 이렇게 갈립니다.

남의 숫자에 흔들린 날 내 한 줄이 깎이고 있을 때
모임·명절·단톡방 다음 날 갑자기 시작된다 그런 일이 없어도 몇 주째 같은 생각이 든다
통장과 생활은 그대로다 적금을 깨거나 건너뛰는 달이 생긴다
한 줄을 다시 읽으면 지금도 대체로 채워져 있다 한 줄에 쓴 것이 몇 달째 안 지켜진다
며칠 지나면 가라앉는다 시간이 지나도 그대로다

왼쪽이라면 공고 창은 하루쯤 닫아 둬도 됩니다. 오른쪽이라면 사정이 다릅니다. 한 줄로 봐도 정말 옮기고 싶고 지금 삶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그때는 이직을 제대로 고민해 볼 만합니다.

그때 공고를 보는 눈도 이 한 줄로 바꿉니다. 연봉이 얼마 오르는지 보기 전에, 그 회사가 내 한 줄을 더 채워 주는지 깎는지부터 봅니다. 한 줄이 "저녁 7시 전에 집에 와서 내 시간이 있으면"인 사람에게, 연봉은 더 주지만 출퇴근이 왕복 세 시간인 회사는 한 줄을 깎는 회사입니다. 그렇게 따져 보고도 옮긴다면 그건 내가 고른 이직입니다. 남의 숫자에 떠밀려 옮기는 것과는 다릅니다.

옮기기 전에 면접에서 무엇을 확인하면 좋을지는 연봉 올려 옮겼는데 더 싫어졌다면에 따로 정리해 두었습니다.

정리하면

  • 남의 연봉을 들은 날에도 내 월급과 생활은 그대로입니다. 바뀌는 건 내 삶을 무엇에 대 보느냐입니다.
  • 연구에서도 사람은 금액보다 순위에 더 흔들렸습니다. 연봉이 중간보다 낮다는 걸 안 사람들은 만족이 떨어지고 새 일자리를 알아볼 가능성이 올라갔습니다. 위에 있던 사람들은 아무 변화가 없었습니다.
  • 그동안 만족하며 산 건 진짜입니다. 이분의 기준은 동기에게 받아친 말에 이미 들어 있었습니다.
  • 한 줄은 이렇게 찾습니다. 지난 한 달 누린 것 다섯 개를 적고, 없어지면 싫은 것만 남기고, "나는 ○○면 잘 사는 거다"로 씁니다. 남의 숫자는 넣지 않고, 휴대폰 메모 맨 위에 둡니다.
  • 흔들린 날에는 공고를 열기 전에 이 한 줄부터 꺼내 봅니다.
  • 한 줄로 봐도 옮기고 싶고 지금 삶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그때 이직을 제대로 고민합니다. 공고도 이 한 줄로 봅니다.

다음에 연봉 얘기가 오갈 모임에 가기 전에, 오늘 밤 한 줄만 적어 두세요. 이분이 웃으며 받아친 말처럼, 내가 뭐로 만족하며 사는지는 이미 알고 있을 겁니다. 적어 두면 흔들린 날에도 잊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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