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이 없다고 접은 일이 있다면 — 그 결론, 몇 번 만에 내렸나요
"좀 더 연습이 필요할 것 같아."
대학교 1학년 봄, 밤을 새워 쓴 첫 단편소설을 동아리 합평회에 냈던 분이 선배에게 들은 말입니다. 이분은 그 뒤로 13년 동안 소설을 쓰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회계법인에서 10년째 숫자를 봅니다.
"나는 재능이 없나 보다"라는 결론을 내린 적이 있다면, 그 결론을 만든 장면이 몇 번이었는지부터 세어보셨으면 합니다. 세어보면 생각보다 적은 경우가 많거든요. 이 글에는 그 결론이 어떻게 굳는지, 그리고 내가 무엇을 왜 그만뒀는지 확인하는 질문들을 정리했습니다.
"나는 재능이 없나 보다"는 몇 번 만에 나왔을까요
어릴 때부터 소설가가 되고 싶던 분이 있었습니다. 대학에 들어간 3월에 글쓰기 동아리에 들어갔고, 한 달 뒤에는 밤을 새워 쓴 20쪽짜리 첫 단편을 회지에 냈습니다.
합평회 날 선배들 말이 하나씩 날아왔습니다. "좀 더 연습이 필요할 것 같아." "문장이 매끄럽지 않네." "전개가 예측 가능해." 얼굴이 빨개지고 손이 떨렸다고 합니다.
그 뒤로 공모전에 세 번 원고를 냈고, 세 번 다 떨어졌습니다. 네 번째 원고 앞에서 멈췄습니다. 그때 속으로 한 말이 "내가 재능이 없나 보다"였습니다. 2학년 2학기에 동아리를 그만두면서 글쓰기도 같이 그만뒀고, 졸업반이 되어 자기소개서를 쓸 때는 글 쓰는 일과 관련된 직무에 한 곳도 지원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이분은 서른셋, 회계법인 10년 차입니다. 가끔 예전 소설 파일을 열어보는데, 첫 문장만 읽고 닫는다고 합니다.
여기서 하나 세어볼 게 있습니다. "나는 글에 재능이 없는 사람"이라는 결론을 내릴 때 이분이 손에 쥐고 있던 근거는 합평회 한 번과 공모전 세 번이었습니다. 모두 네 번입니다. 그 네 번이 13년짜리 결론이 됐고, 직무를 고르던 순간에는 선택지 하나를 통째로 지웠습니다.

선배들이 틀린 말을 한 걸까요
선배들은 그날 할 말을 했습니다. 첫 소설이 매끄러울 리 없고, 합평회는 원래 아쉬운 데를 짚어주는 자리입니다.
갈린 곳은 그 말을 받은 방식입니다. 선배들이 한 말은 "이번 글이 이렇다"였는데, 이분이 받아 든 말은 "나는 이런 사람이다"였습니다. 작품 하나에 대한 평가로 들어온 문장이 사람 전체에 대한 판결로 바뀌어 남은 겁니다.
회사에서도 같은 일이 자주 일어납니다.
| 들은 말 (그때 그 결과물에 대한 말) | 받은 말 (나라는 사람에 대한 결론) |
|---|---|
| "이번 발표, 앞부분이 좀 길었어요." | "나는 발표 체질이 아니야." |
| "기획서 논리가 중간에 비어요." | "나는 기획 머리가 없어." |
| "엑셀 수식 틀린 데 있네요." | "나는 숫자에 약한 사람이야." |
| "영어 메일 표현이 좀 어색해요." | "나는 영어는 안 되는 사람이야." |
| "시안 톤이 우리 브랜드랑 안 맞네요." | "나는 감각이 없어." |
왼쪽 말에는 고칠 거리가 들어 있습니다. 앞부분을 줄이면 되고, 빈 논리를 채우면 됩니다. 오른쪽 말에는 고칠 거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오른쪽으로 받는 순간 다음 시도가 사라집니다. 고칠 게 없으니 다시 해볼 이유도 없어지니까요.
세 번은 왜 판단하기에 모자란 횟수일까요
세 번은 잘하는지 못하는지 아직 알 수 없는 횟수입니다. 첫 작품, 첫 발표, 첫 기획서는 대개 그 사람이 앞으로 만들 것 중에서 가장 서툰 버전입니다. 공모전은 많은 원고 가운데 몇 편만 뽑는 자리라서, 떨어졌다는 사실이 알려주는 건 "이번에 뽑히지 않았다"까지입니다. 재능이 있고 없고를 가리기엔 정보가 너무 적습니다.
그런데도 결론이 이렇게 빨리 굳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실패한 장면이 훨씬 크게 남기 때문입니다. 얼굴이 빨개지고 손이 떨렸던 합평회 날은 13년이 지나도 선명한데, 그 전에 혼자 글을 쓰며 시간 가는 줄 몰랐던 밤들은 근거로 세지 않습니다. 실수 한 번이 실제보다 몇 배로 커져서 남는 이유는 몇 주 전 실수가 아직도 떠오를 때 글에 따로 정리해 두었습니다.
심리학에는 몇 번의 실패 끝에 "해도 안 된다"며 손을 놓는 상태를 가리키는 '학습된 무기력'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개념을 처음 내놓은 마틴 셀리그만은 50년 뒤 동료 스티븐 마이어와 연구를 다시 정리하면서 원래 설명을 고쳤습니다(Maier & Seligman, 2016, Psychological Review). 괴로운 일을 오래 겪으면 손을 놓는 건 원래 기본으로 나오는 반응이라는 겁니다. 배워서 생기는 쪽은 오히려 반대편, "내가 해서 달라진다"는 경험이고요. 동물 실험에서 출발한 연구라 사람 마음에 그대로 옮기는 건 조심스럽지만, 방향은 분명합니다. 멈춰 선 사람에게 먼저 필요한 건 작게라도 해서 달라지는 경험입니다.
내가 뭘 왜 그만뒀는지 확인하는 질문 8가지
접어둔 일이 하나 떠올랐다면 아래 질문에 순서대로 답을 적어보세요. 머릿속으로만 답하면 옛날 결론이 대신 대답합니다. 종이에 적어야 날짜와 횟수가 눈에 보입니다.
| # | 질문 | 왜 묻나 | 이런 답이 나오면 |
|---|---|---|---|
| 1 | 내가 접은 게 정확히 뭔가요? 분야 전체인가요, 그 분야의 직업 하나인가요? | 소설가라는 직업 하나를 접으면서 '글' 전체를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 직업 하나였다면 분야는 아직 살아 있습니다 |
| 2 | "나는 이건 안 된다"고 처음 생각한 건 언제인가요? | 결론이 몇 살인지 확인합니다 | 5년, 10년 전이라면 지금 실력으로 내린 결론이 아닙니다 |
| 3 | 그 결론을 만든 장면은 몇 개인가요? 날짜와 함께 적어보세요 | 근거의 개수를 셉니다 | 세 개 이하라면 아직 판단할 수 없는 횟수입니다 |
| 4 | 그 장면에서 들은 말을 토씨 그대로 적으면 뭐였나요? | 기억 속 문장은 실제보다 세게 바뀌어 있을 때가 많습니다 | 원래 말이 결과물에 대한 말이었다면, 사람에 대한 판결은 내가 붙인 겁니다 |
| 5 | 그 말을 한 사람은 그 일을 얼마나 잘 아는 사람이었나요? | 판정한 사람의 자리를 봅니다 | 한두 학년 위 선배, 한 번 본 심사위원이라면 한 사람의 의견입니다 |
| 6 | 그만둘 무렵 나는 어떤 상태였나요? | 지쳐 있었는지, 주변 기대에 밀렸는지, 방법을 물어볼 사람이 없었는지 봅니다 | 실력 말고 다른 이유가 있었다면 그 이유는 지금 사라졌을 수 있습니다 |
| 7 | 그 일을 하던 시간 중에 즐거웠던 장면은 몇 개인가요? | 실패만 세고 즐거움은 안 세는 버릇을 바로잡습니다 | 3번에서 적은 개수보다 많다면 결론의 근거가 한쪽으로만 쌓인 겁니다 |
| 8 | 지금 가장 작은 크기로 딱 한 번 해본다면 무엇일까요? | 오래된 결론을 새 근거로 다시 시험합니다 | 30분 안에 끝나는 크기로 줄여서 적습니다 |
다 적고 나면 대개 둘 중 하나로 갈립니다. 근거가 적고 오래됐다면 그 결론은 그때의 내가 그때 기억으로 내린 결론입니다. 지금의 내가 내린 판단은 아직 없는 셈이죠. 근거가 많고 최근이라면 바로 다음 이야기를 읽어주세요.
정말 안 맞는 일이었다면요
모든 포기가 성급한 건 아닙니다. 조건을 바꿔가며 여러 해 해봤고, 믿을 만한 사람 여럿에게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고, 무엇보다 하는 동안 즐거운 순간이 거의 없었다면 접는 게 맞는 판단일 수 있습니다. 그건 자책할 일도, 억지로 붙잡을 일도 아닙니다.
다만 그때도 1번 질문만큼은 한 번 더 확인해 두셨으면 합니다. 코칭에서 "하고 싶은 게 없다"는 분들과 이야기해 보면, 안 맞았던 건 그 분야의 직업 하나인데 분야 전체를 같이 버린 경우를 자주 봅니다. 피아니스트는 못 되겠다는 생각이 음악 전체를 닫고, 화가가 될 재능은 없다는 생각이 전시 기획이나 미술 교육 같은 일까지 같이 닫습니다.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소설가가 아니어도 글로 일하는 자리는 생각보다 많습니다.
분야는 남겨두고 역할만 바꿔보는 것. 완전히 접기로 정하기 전에 거기까지는 열어볼 만합니다.
다시 꺼내볼 때는 얼마나 작게 시작해야 할까요
오래 접어둔 일을 다시 꺼낼 때 가장 많이 넘어지는 건 크게 시작할 때입니다. 13년 만에 장편을 쓰겠다고 앉으면 첫 문장에서 다시 멈추기 쉽습니다. 그러면 그 원고는 옛 결론을 한 번 더 확인해 주는 다섯 번째 근거가 되고 맙니다.
그래서 시작은 30분 안에 끝나는 크기로 줄입니다.
- 소설 대신 장면 하나를 한 문단으로 써보기
- 발표 대신 팀 회의에서 3분짜리 공유를 한 번 해보기
- 기획서 대신 한 장짜리 제안 메모를 써서 한 사람에게만 보여주기
- 영어 대신 영어 메일 한 통을 초안까지만 써보기
그리고 해본 날짜를 적습니다. 3번 질문에 적었던 실패 장면 옆에, 이번에 해본 장면을 나란히 적는 겁니다. 합평회 한 번과 공모전 세 번뿐이던 목록에 새 줄이 하나 생기면, 13년 된 결론이 처음으로 반대쪽 근거와 나란히 놓입니다.

그 목록이 몇 줄 쌓였을 때 다시 판단해도 늦지 않습니다.
정리하면
- "나는 재능이 없다"는 결론이 있다면, 그 결론을 만든 장면이 몇 개였는지부터 세어보세요. 소설을 13년 동안 접었던 분의 근거는 합평회 한 번과 공모전 세 번이었습니다.
- 들은 말은 대개 그때 그 결과물에 대한 말입니다. 그걸 "나는 그런 사람"으로 받는 순간 다음 시도가 사라집니다.
- 세 번은 잘하는지 못하는지 알 수 없는 횟수입니다. 오래된 결론은 지금 실력보다 그때 기억에 가깝습니다.
- 접은 게 분야 전체인지, 직업 하나인지 확인하세요. 분야는 남겨두고 역할을 바꿀 수 있습니다.
- 다시 꺼낼 때는 30분짜리 크기로 한 번 해보고, 그 날짜를 실패 장면 옆에 적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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