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은 잘하는데 재미가 없다면 — 좋아하는 일 vs 잘하는 일 대신 먼저 가려볼 것

일은 잘하는데 재미가 없다면 — 좋아하는 일 vs 잘하는 일 대신 먼저 가려볼 것

회식 자리에서 신입이 5년 차 선배에게 물었습니다.

"선배님은 이 일이 좋으세요?"

선배는 잠깐 말이 막혔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답했습니다.

"좋다기보다는… 그냥 하는 거지."

이 선배는 일을 잘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숫자를 정리하고 보고서를 쓰는 일이었는데, 상사도 인정했습니다. 그런데 재미가 없었습니다. 월요일은 무겁고 금요일만 기다려졌습니다. 승진을 해도 기쁘지가 않았습니다.

요즘 내 입에서도 "그냥 하는 거지"가 나온다면, 그만둘지부터 정하기 전에 이 글을 먼저 읽어 보시면 좋겠습니다.

잘하는데 재미가 없는 건 배부른 고민일까요

일을 제대로 해 본 사람에게 오는 고민입니다. 배부른 소리도, 끈기가 부족해서 생기는 일도 아닙니다.

잘한다는 건 그 일을 해낼 능력이 있다는 뜻이고, 재미있다는 건 그 일에 마음이 간다는 뜻입니다. 둘은 서로 다른 것이라, 하나가 있다고 다른 하나가 따라오지 않습니다. 5년쯤 일하면 실무는 손에 익는데, 그때부터 오히려 이 차이가 크게 느껴집니다. 처음엔 배우는 재미가 빈자리를 채워 주다가, 익숙해지고 나면 그 빈자리가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 둘 중 무엇을 골라야 할까요

저는 이 질문부터 바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를 고르려고 하면 계속 같은 데서 맴돕니다. 좋아하는 일을 고르자니 지금 쌓은 게 아깝고, 잘하는 일을 고르자니 지금처럼 재미가 없을 것 같으니까요.

일은 두 가지가 합쳐진 것입니다.

  • 어느 분야에서 일하느냐 — 제조, 게임, 스포츠, 여행, 공연, 헬스케어 같은 산업이나 동네
  • 거기서 무슨 역할을 맡느냐 — 숫자 정리, 영업, 기획, 디자인, 운영 같은 직무

그러니 질문은 이 두 가지를 어떻게 조합하느냐입니다. 둘 중 하나를 고르는 문제로 볼 필요가 없습니다. 좋아하는 분야 안에서 잘하는 역할을 찾을 수도 있고, 잘하는 역할을 들고 좋아할 분야를 찾아갈 수도 있습니다. 이 글은 뒤쪽, 잘하는 역할은 그대로 두고 분야를 찾는 쪽을 이야기합니다. 이미 잘하는 게 있는 5년 차에게 맞는 방향이기 때문입니다.

같은 역할이 분야에 따라 얼마나 달라지는지 보면 감이 옵니다.

잘하는 역할 지금 분야 이런 분야로 옮기면
숫자 정리·보고서 제조사 마케팅팀 게임 회사 사업분석, 프로스포츠 구단 마케팅 데이터, 여행사 수요 분석
영업 사무용품 납품 피규어·캐릭터 상품, 캠핑 장비, 좋아하는 브랜드의 B2B 영업
행사 기획·운영 사내 교육 공연·페스티벌 기획, 스포츠 대회 운영, 전시 기획
고객 응대 통신사 상담 반려동물 용품, 좋아하는 취미 플랫폼의 커뮤니티 운영
글쓰기 공공기관 보도자료 여행 매거진, 게임 스토리·세계관 문서, 음식 브랜드 콘텐츠

왼쪽 칸의 역할은 그대로입니다. 분야만 바뀝니다. 그런데 하루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오후 사무실에서 두 모니터의 숫자를 능숙하게 정리하지만 무덤덤한 얼굴의 5년 차 직장인 — 잘하는 역할도 마음이 가지 않는 분야에서는 "그냥 하는 일"이 된다

좋아하는 분야에서 일하면 정말 달라지나요

달라집니다. 연구로도 확인된 이야기입니다.

60년 넘게 쌓인 직업 흥미 연구를 모아 다시 분석한 결과, 사람의 관심과 그 사람이 하는 일이 잘 맞을수록 성과가 좋았고, 그 일을 그만두지 않고 더 오래 이어 갔습니다(Nye 외, Perspectives on Psychological Science, 2012). 관심은 기분 좋게 일하게 해 주는 데서 끝나지 않고, 실제로 일을 더 잘하고 오래 하게 만듭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영업을 정말 잘하는데 관심 없는 물건을 팔던 사람이, 평소 모으던 피규어를 팔게 됐다고 해 봅시다. 영업하는 방식은 똑같습니다. 그런데 고객이 묻는 걸 이미 알고 있고, 신제품 소식을 먼저 찾아보고, 고객과 할 이야기가 많아집니다. 같은 영업인데 전혀 다른 일이 됩니다.

재미없는 게 역할 쪽인지, 분야 쪽인지 어떻게 가르나요

떠올려 보기 하나로 가를 수 있습니다.

지금 잘하는 역할은 그대로 둡니다. 그리고 분야만 바꿔서 떠올려 봅니다. 오래 들여다봐도 더 알고 싶어지는 분야에서, 똑같이 그 일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을요. 이 선배라면, 좋아하는 분야의 회사에서 똑같이 숫자를 정리하고 보고서를 쓰는 장면입니다.

그 장면에서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봅니다.

떠올렸을 때 이런 마음이면 재미없는 쪽은 다음에 할 일
조금이라도 해 보고 싶어진다. 그 분야 숫자는 궁금하다 분야 쪽 잘하는 역할은 버리지 않는다. 옮길 건 분야다
그 분야 얘기는 신나는데, 막상 숫자 정리할 생각을 하면 여전히 무겁다 역할 쪽 그 분야 안의 다른 역할을 본다
어느 분야를 떠올려도 똑같이 무겁다 역할 쪽, 또는 지금 지쳐 있는 상태 먼저 쉬고, 그다음 역할을 다시 본다
떠올릴 분야 자체가 없다 아직 모름 아래 질문으로 분야부터 찾는다

첫 줄에 해당한다면, 잘하는 걸 버릴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까지 쌓은 5년은 그대로 들고 갈 수 있습니다. 역할까지 바꾸는 건 처음부터 다시 쌓는 일이라 비용이 훨씬 큽니다. 그래서 분야를 먼저 확인하는 게 순서입니다.

떠올릴 분야가 없다면, 어떻게 찾나요

"좋아하는 분야가 딱히 없는데요" 하는 분도 많습니다. 대개는 일과 연결해 본 적이 없을 뿐입니다. 이 질문들에 답을 적어 보세요.

  • 지난 1년 동안 시간 가는 줄 몰랐던 순간은 언제였나? 무엇을 하고, 무엇을 보고 있었나.
  • 주말에 누가 시키지 않아도 찾아보는 게 뭔가? 유튜브 시청 기록, 저장해 둔 글, 자주 가는 매장이 힌트입니다.
  • 돈을 아끼지 않고 쓰는 분야가 뭔가? 장비든, 공연이든, 여행이든.
  • 친구들이 그 분야 얘기만 나오면 나한테 물어보는 게 있나?
  • 뉴스를 보다가 나도 모르게 누르게 되는 기사는 어느 분야인가?
  • 오래 들여다봐도 안 질리고, 알면 알수록 더 알고 싶어지는 게 뭔가?

답이 두세 개 겹치는 곳이 떠올려 볼 분야입니다. 흔히 말하는 "대단한 열정"일 필요는 없습니다. 오래 들여다봐도 질리지 않는 정도면 충분합니다.

주말 오후 아웃도어 장비 매장에서 장비 하나를 들고 오래 들여다보는 직장인 — 시키지 않아도 찾아보는 분야가 옮겨 갈 분야의 후보가 된다

분야 쪽이라면, 다음엔 무엇을 하나요

바로 사표를 쓸 필요는 없습니다. 이 순서로 조금씩 확인해 보면 됩니다.

  1. 그 분야 회사의 같은 직무 채용공고를 세 개 읽어 봅니다. 이 선배라면 게임 회사 사업분석, 스포츠 구단 데이터 담당 같은 공고입니다. 하는 일이 지금과 얼마나 겹치는지 보면, 옮길 수 있는지가 보입니다.
  2. 그 분야에서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 한 명과 이야기해 봅니다. 링크드인이나 지인을 통해 30분이면 됩니다. "그 분야에서 숫자 보는 일은 어떤가요?" 하나만 물어도 많이 알게 됩니다.
  3. 지금 회사 안에서 가까운 분야가 있는지도 봅니다. 같은 회사의 다른 사업부, 신사업 팀이 좋아하는 분야와 닿아 있다면 이직보다 가벼운 길이 됩니다.

이 세 가지를 해 보는 동안 떠올려 본 장면이 더 선명해지거나, 생각보다 별로라는 걸 알게 됩니다. 어느 쪽이든 그만둘지 말지를 정하기 전에 알아 두는 편이 낫습니다.

역할 쪽이라면요

떠올려 보기를 해 봐도 숫자 정리 자체가 무겁다면, 그때 역할을 다시 보면 됩니다. 잘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건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다만 역할을 바꿀 때도, 좋아하는 분야 안에서 바꾸면 덜 막막합니다. 분야에 대한 관심이 새 역할을 배우는 동안 버티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정리하면

  • 잘하는데 재미가 없는 건 배부른 고민이 아닙니다. 잘하는 것과 마음이 가는 것은 서로 다른 것입니다.
  • "좋아하는 일 vs 잘하는 일"은 하나를 고르는 질문이라 계속 맴돕니다. 일은 분야와 역할, 두 가지의 조합입니다.
  • 관심과 일이 맞을수록 성과가 좋고 오래 이어 간다는 연구가 있습니다(Nye 외, 2012).
  • 잘하는 역할은 그대로 두고, 분야만 바꿔 떠올려 봅니다. 해 보고 싶어지면 옮길 건 분야입니다.
  • 떠올릴 분야가 없으면, 시간 가는 줄 몰랐던 순간과 주말에 찾아보는 것에서 찾습니다.
  • 분야 쪽이라면 채용공고 세 개, 사람 한 명, 사내 이동 가능성부터 확인합니다.
  • 그래도 무겁다면 그때 역할을 다시 봅니다.

"그냥 하는 거지"라는 말이 나온 날, 오늘 밤 한 번만 떠올려 보세요. 내가 잘하는 이 일을, 오래 들여다봐도 질리지 않는 분야에서 하고 있는 모습을요. 그 장면에서 마음이 조금이라도 움직인다면, 지금까지 쌓은 5년은 버릴 게 하나도 없습니다.

내가 잘하는 역할이 정확히 무엇인지 말로 정리해 두면, 분야를 옮길 때 들고 갈 것이 분명해집니다. 9WAY 무료 강점 진단으로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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