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은 왜 바로 결정을 못 할까 — 결정이 닿는 사람 수

팀장은 왜 바로 결정을 못 할까 — 결정이 닿는 사람 수

다른 팀에서 오늘까지 답을 달라고 하는데, 팀장님이 바로 답을 안 주고 이 사람 저 사람한테 물어보고 다닙니다. 그러다 답은 퇴근할 때쯤에야 나갑니다.

이런 걸 보면 답답합니다. 내가 하면 삼십 분이면 끝날 것 같으니까요.

실제로 커뮤니티에도 그런 글이 올라왔습니다. 일정 하나 정하는 데도 관련자들한테 다 물어보고 움직이는 팀장님 이야기였는데, 글쓴 분이 이렇게 적었더군요.

"제가 팀장이라면 그렇게 안 할 것 같거든요."

저는 이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본인 자리에서 보면 진짜로 본인이 더 빠르거든요. 다만 그 하루 동안 팀장이 논 게 아니라는 것도 같이 보시면 좋겠습니다.

그 하루 동안 팀장이 한 건 고민이 아니라 확인입니다

답이 늦게 나갔다고 해서 그 시간에 결단을 못 내리고 있었던 건 아닙니다. 대개는 돌아다니면서 확인을 하고 있습니다.

왜 확인이 필요하냐면, 내 결정은 나한테서 끝나는데 팀장 결정은 안 끝나기 때문입니다. 일정 하나만 당겨도 옆 팀 일정이 같이 밀리고, 누군가의 이번 주가 통째로 바뀌고, 위에 이미 보고된 숫자까지 틀어집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들한테 안 물어보고 그냥 정해버리면, 그건 빠른 게 아니라 사고입니다.

여기서 순서를 한 번 뒤집어 보셔야 합니다. 팀장이 우유부단해서 확인을 많이 다니는 게 아니라, 확인할 데가 많은 결정을 맡고 있어서 느려 보이는 것입니다. 같은 사람이 자기 선에서 끝나는 일을 정할 때는 3초 만에 정합니다.

왜 어떤 결정만 유독 오래 걸릴까요

결정에 걸리는 시간을 정하는 건 그 사람의 결단력이 아니라 그 결정이 닿는 사람 수입니다. 닿는 사람이 늘어나면 확인해야 할 곳은 사람 수보다 훨씬 빠르게 늘어납니다.

이건 감이 아니라 계산으로도 나옵니다. 소프트웨어 공학의 고전인 프레더릭 브룩스의 『맨먼스 미신』(1975)에는 사람이 n명이면 서로 이어지는 길은 n(n−1)/2개가 된다는 정리가 나옵니다. 다섯 명이면 열 갈래, 열 명이면 마흔다섯 갈래입니다. 사람이 두 배가 되면 맞춰야 할 곳은 네 배 넘게 늘어난다는 얘기죠.

브룩스가 이 계산을 꺼낸 이유가 재밌습니다. 늦어진 프로젝트에 사람을 더 넣으면 더 늦어진다는 걸 설명하려고 쓴 겁니다. 일하는 손이 늘었는데도 느려지는 건, 늘어난 손보다 늘어난 길이 더 많아서입니다.

관리자의 하루가 실제로 그렇게 생겼다는 관찰도 오래전에 나와 있습니다. 헨리 민츠버그가 관리자 다섯 명을 일주일씩 따라다니며 기록한 『The Nature of Managerial Work』(1973)를 보면, 한 사안에 붙어 있는 시간의 중앙값이 9분이었습니다. 표본이 다섯 명뿐이라 숫자 자체를 대단하게 볼 건 아닙니다. 다만 관리자의 일이 한 가지를 오래 파는 모양이 아니라 짧게 여러 곳에 닿는 모양이라는 건, 그 뒤로 나온 연구들에서도 비슷하게 확인됩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정리됩니다.

결정이 느린 사람이 있는 게 아니라, 닿는 사람이 많은 결정이 있습니다.

그럼 그 답답한 시간에 뭘 하면 될까요

팀장이 누구한테 물어보러 가는지 이름만 적어두시면 됩니다. 그것도 대단한 기록이 아니라 메모장에 이름 두세 개면 충분합니다.

한 달쯤 모아보면 재밌는 게 보입니다. 맨날 같은 이름이 나오거든요. 그러니까 이 팀의 결정이 실제로 어디까지 닿는지가 그 이름들에 다 적혀 있는 셈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야말로 내 자리에서는 안 보이는데 팀장 자리에서는 보이는 사람들이고요.

적을 때는 이 세 가지만 남기시면 됩니다.

  • 무슨 안건이었나 — 일정 변경인지, 예산인지, 인력 배치인지
  • 누구한테 갔나 — 부서 말고 사람 이름으로
  • 뭘 확인하러 갔나 — 승인인지, 일정 여유인지, 숫자 대조인지

세 번째 칸이 제일 중요합니다. 같은 회계팀이라도 어떤 안건에는 숫자를 확인하러 가고 어떤 안건에는 시기를 확인하러 갑니다. 그 차이를 알면 다음에 내가 먼저 챙겨둘 수 있습니다.

내 결정은 어디까지 닿고 있을까요

이건 직무보다 안건 유형으로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같은 마케터라도 일정을 정할 때 닿는 곳과 예산을 쓸 때 닿는 곳이 다르니까요.

아래 표에서 내가 자주 다루는 안건 두세 줄만 보시면 됩니다. 오른쪽 칸이 비어 있으면, 지금 내가 그 결정을 반쪽만 보고 있다는 뜻입니다.

안건 유형 표면상 담당 실제로 같이 흔들리는 자리
일정 변경·마감 조정 우리 팀 앞뒤 공정 팀, 이미 보고된 일정, 외부 파트너 납기
예산 집행·비용 처리 팀장 회계·재무의 마감 주기, 연간 예산 항목, 세금계산서 시점
인력 배치·업무 재분배 팀장 인사, 당사자의 평가 항목, 옆 팀이 기대하던 지원
외부 발송 문서·메일 작성자 법무·컴플라이언스, 대표 명의 여부, 이전에 나간 문구
가격·견적 조정 영업 다른 고객 단가, 원가 기준, 이미 나간 제안서
채용·면접 진행 현업 팀 인사 직급 체계, 연봉 밴드, 팀 정원
시스템 권한·계정 부여 IT 보안 정책, 감사 기록, 퇴사자 처리 절차
계약 문구 수정 담당자 법무, 표준 계약서, 다음 계약들의 선례
재고·발주 구매 창고 공간, 현금 흐름, 반품 정책
대외 공지·고객 안내 마케팅 CS 응대 스크립트, 영업 중인 딜, 홍보 일정

오른쪽 칸이 곧 확인 경로입니다. 그리고 이 표를 보시면 왜 위로 올라갈수록 결정이 느려지는지도 자연스럽게 이해가 됩니다. 자리가 올라간다는 건 오른쪽 칸이 길어진다는 뜻이거든요.

확인을 미리 붙여서 올리면 무슨 일이 생기나요

팀장 입장에서 확인할 데가 하나 줄어듭니다. 그것도 내가 이미 확인을 마치고 온 거라 되돌릴 일이 없죠.

방법은 단순해서, 올릴 때 한 줄만 붙이시면 됩니다. 상황별로 바로 쓰실 수 있게 정리했습니다.

상황 붙이는 한 줄
일정을 당기거나 미룰 때 "이 일정으로 옮기면 ○○팀 납기가 이틀 여유 있는 건 확인했습니다."
예산을 쓸 때 "회계팀에 마감 주기 확인했고, 이번 달 항목으로 잡으면 된다고 합니다."
문서를 밖으로 보낼 때 "지난번 나간 문구랑 대조했고, 달라진 데는 이 두 문장입니다."
견적을 조정할 때 "다른 고객 단가랑 안 부딪히는 선인지 먼저 봤습니다."
사람을 붙일 때 "○○님 이번 주 일정 여유 있는지 본인한테 먼저 물어봤습니다."
시스템을 건드릴 때 "IT에 권한 범위 물어봤고, 이 계정까지는 문제없다고 합니다."
아직 확인을 못 했을 때 "여기까지는 확인했고, ○○팀 확인만 남았습니다. 제가 받아올까요?"
확인할 데를 모르겠을 때 "이거 저희 선에서 정해도 되는 건지, 어디 한번 물어봐야 하는 건지 알고 싶습니다."

마지막 두 줄이 특히 쓸모가 있습니다. 다 확인한 척하지 않으면서도 확인이 필요한 자리라는 걸 안다는 게 드러나거든요. 그리고 이런 게 몇 번 쌓이면 맡겨도 되는 사람이 됩니다.

확인하느라 늦는 것과 결정을 피하느라 늦는 것은 다릅니다

여기까지 읽고 "우리 팀장은 진짜 그냥 느린 건데요" 하는 분도 계실 겁니다. 맞습니다. 확인이 아니라 회피인 경우도 분명히 있습니다.

둘은 이렇게 갈라집니다.

  • 확인형은 돌아온 뒤에 답이 나옵니다. 회피형은 돌아와도 답이 안 나오고, 다음 회의로 넘어갑니다.
  • 확인형은 누구한테 물었는지 말해줍니다. 회피형은 "좀 더 봐야 한다"에서 끝나고, 물어본 사람이 없습니다.
  • 확인형은 다음번에 빨라집니다. 같은 유형의 안건이 두 번째 오면 확인할 데를 이미 알고 있으니까요. 회피형은 두 번째도 똑같이 걸립니다.

세 번 다 아니라면 그건 확인이 아니라 미루기가 맞습니다. 그때는 답답해하는 대신 기한을 물어보는 편이 낫습니다. "언제까지 답 주실 수 있을지 알면 제가 상대 팀에 그렇게 말해두겠습니다" 정도면 충분하고요. 결정을 재촉하는 게 아니라 일정만 묻는 거라 상대도 방어적으로 안 나옵니다.

승진은 일이 늘어나는 게 아닙니다

한 번 더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위로 갈수록 일의 양이 늘어나는 게 아니라, 내 결정이 닿는 사람이 늘어납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필요한 건 더 빨리 정하는 능력이 아니라 어디까지 닿는지 아는 눈입니다.

그리고 그 눈은 그 자리에 가서 생기지 않습니다. 지금 팀장이 확인하러 가는 길을 옆에서 보면서 미리 생깁니다. 답답한 그 시간이 사실은 다음 자리를 공짜로 배우는 시간인 셈이죠.

오늘 팀장님이 또 답을 안 주고 어디론가 갔다면, 이번엔 어디로 가는지 한번 보세요. 그 이름들이 지금 내가 못 보고 있는 화면입니다.

사람마다 잘 보이는 범위가 다르고, 그래서 같은 자리에서도 먼저 챙기는 게 다릅니다. 내가 어떤 걸 잘 보는 사람인지 궁금하시면 9WAY 강점 진단이 참고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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