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고 싶은데 겁이 날 때 — 사표보다 먼저 회사 밖 한 명에게 보여 줄 것

퇴사하고 싶은데 겁이 날 때 — 사표보다 먼저 회사 밖 한 명에게 보여 줄 것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를 쓴 송희구 작가는 회사를 정말 좋아했던 사람입니다.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서울에 있는 '회사'라는 공간이 아주 소중하게 느껴지던 때였다. 그만큼 정말 모든 것을 쏟아가며 열심히 일했고."

이분이 글을 쓰기 시작한 건 마흔 살 때였습니다. 회사를 다니면서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일기와 소설을 썼고, 그걸 개인 블로그에 올렸습니다. 책이 나오고, 웹툰과 드라마 이야기가 오가고, 유튜브까지 굴러가기 시작한 다음에야 회사를 그만뒀습니다.

퇴사하고 잘된 사람을 보면 대개 용기가 대단하다고들 합니다. 그런데 이분이 걸어온 순서를 보면, 퇴사는 첫 번째 일이 아니었습니다. 맨 마지막이었습니다.

나가고 싶은데 겁이 나서 몇 달째 사표를 못 내고 있다면, 이 순서를 한 번 보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사표보다 먼저 할 일 하나를 이 글에서 같이 정해 보겠습니다.

퇴사하고 잘된 사람은 용기가 있어서 나왔을까요

용기보다 순서가 먼저였습니다. 송희구 작가가 인터뷰에서 직접 밝힌 이야기를 시간 순서로 놓으면 이렇습니다.

언제 한 일 회사는
입사 5년 차쯤 블로그로 옷을 팔고, 취미로 하던 가죽 공예로 지갑과 가방을 만듦 다니는 중
마흔 글쓰기를 시작.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일기와 소설을 씀 다니는 중
마흔 이후 개인 블로그에 소설을 하루 한 편씩 올림. 블로그 이웃이 400명에서 열흘 만에 2만 명이 됐고, 10회쯤 올렸을 때 출판사·제작사에서 연락이 옴 다니는 중(나중에 휴직)
퇴사 6개월 전 유튜브 채널을 시작 다니는 중
그 뒤 드라마 대본 작업이 본격화되면서 퇴사를 결심 퇴사

출처: 하퍼스 바자 코리아 인터뷰(2025.12), 헤럴드경제 인터뷰(2022.7)

표에서 눈여겨볼 곳은 세 번째 줄입니다. 이분은 사표를 쓰기 전에 이미 회사 밖 사람들에게 자기 글을 보여 줬고, 사람들이 읽는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이웃 400명이던 블로그가 열흘 만에 2만 명이 됐다는 건, 회사 이름이 전혀 붙지 않은 자기 글이 밖에서 통했다는 뜻입니다.

그 앞의 옷 판매나 가죽 공예도 같은 일입니다. 크게 성공한 일이 아니어도, 회사 밖에서 내가 만든 걸 누군가 사거나 쓰는지 여러 번 확인해 본 셈입니다.

그러니 이분이 나올 때 필요했던 용기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작았을 겁니다. 밖에서 무엇이 통하는지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요.

나가기 전에 확인하면 정말 덜 실패하나요

덜 실패합니다. 연구로도 확인된 이야기입니다.

경영학자 조지프 라피(Joseph Raffiee)와 지에 펑(Jie Feng)은 미국 직장인들의 경력 기록을 따라가며 창업한 사람들을 두 무리로 나눠 비교했습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바로 창업한 사람들, 그리고 회사를 다니면서 먼저 사업을 시작해 본 사람들입니다. 회사를 다니면서 시작한 쪽이 실패할 확률이 33% 낮았습니다(Raffiee & Feng, Academy of Management Journal, 2014).

연구진은 회사를 다니며 시작한 사람들이 위험을 덜 진 채로 사업이 되는지 먼저 알아본 쪽이라고 설명합니다. 월급이 나오는 동안에는 결과가 나빠도 배울 거리로 남습니다. 반응이 없으면 고치면 되고, 끝내 안 되면 접으면 됩니다. 이미 사표를 낸 사람에게 같은 결과가 오면 그때는 생활이 걸린 문제가 됩니다.

창업만 해당하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프리랜서로 독립하든, 다른 업계로 옮기든, 회사 밖에서 내 일이 통하는지 먼저 확인하는 순서는 똑같이 쓸 수 있습니다.

나가고 싶은데 겁이 나는 건 이상한 걸까요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정확한 감각에 가깝습니다.

겁이 나는 이유는 대개 하나입니다. 회사 밖에서 내가 통하는지 한 번도 확인해 본 적이 없어서입니다.

회사 안에서는 내가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걸 매달 확인받습니다. 월급이 들어오고, 평가를 받고, 누가 나를 찾습니다. 그런데 그 확인에는 늘 회사 이름이 같이 붙어 있습니다. 회사 이름을 떼고, 내가 만든 것만 들고 밖에 섰을 때 누가 반응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모르는 채로 뛰어내리려니 겁이 나는 게 당연합니다.

그러니 이 겁은 확인해서 줄이면 됩니다. 용기로 누를 필요는 없습니다. 확인을 한 번이라도 해 보면, 겁이 줄든지 무엇을 더 준비해야 하는지 보이든지 둘 중 하나는 됩니다.

주말 카페에서 회사 밖 지인에게 직접 만든 자료 한 장을 건네 보여 주고 반응을 기다리는 직장인 — 사표보다 먼저 할 확인은 이렇게 작게 시작한다

회사 밖 한 명에게 무엇을 보여 주면 될까요

크고 완성된 게 아니어도 됩니다. 이번 달 안에, 회사 밖 사람 한 명에게, 내가 만든 것 하나를 보여 주는 게 시작입니다. 정리한 자료 한 장이든, 글 한 편이든, 만든 템플릿 하나든 괜찮습니다.

무엇을 고를지 막막하면 이 네 가지를 차례로 물어보세요.

  • 사람들이 나한테 자주 묻는 게 뭔가? 동료나 친구가 "이거 어떻게 해?" 하고 물어 오는 것. 이미 누군가 필요로 한다는 뜻입니다.
  • 회사에서 만든 것 중에, 회사 이름과 숫자를 빼도 쓸모 있는 게 뭔가? 일하는 방법, 체크리스트, 순서표 같은 것들입니다.
  • 퇴근하고도 찾아보는 게 뭔가? 시키지 않아도 들여다보는 분야가 오래 할 수 있는 분야입니다.
  • 누가 돈을 주고 부탁한다면 해 줄 수 있는 게 뭔가? 이 질문에 답이 나오면 그게 첫 번째 후보입니다.

직무별로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내 일과 가장 가까운 줄을 골라 그대로 써도 됩니다.

지금 하는 일 보여 줄 수 있는 것 하나 보여 줄 사람
마케팅 작은 가게가 인스타 광고를 처음 할 때 보는 체크리스트 한 장 가게를 하는 친구·지인
인사·채용 직원 5명 이하 회사가 면접 볼 때 쓸 질문 10개 작은 회사 대표 지인
영업 첫 미팅 전에 상대 회사를 10분 안에 파악하는 순서 막 영업을 시작한 후배
회계·재무 프리랜서가 종합소득세 신고 전에 챙길 서류 목록 프리랜서로 일하는 친구
기획·PM 회의록을 5분 안에 정리하는 양식 다른 회사 다니는 친구
개발 반복 업무를 줄이는 작은 스크립트와 사용법 한 장 엑셀 수작업이 많은 지인
디자인 비디자이너가 발표 자료 만들 때 지킬 규칙 5개 발표가 잦은 친구
CS·운영 자주 오는 문의 10개와 답변 틀 쇼핑몰을 하는 지인
교육·강의 30분짜리 사내 교육을 짜는 순서 처음 강의를 맡은 지인
연구·분석 공개 통계로 우리 동네 상권을 읽는 법 한 장 창업을 고민하는 친구

보여 줄 사람은 그 문제를 실제로 겪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나를 응원해 주는 가족보다, 그 자료를 받아서 실제로 써 볼 사람이 낫습니다. 통하는지 확인하려고 보내는 거니까요. 좋은 말을 듣는 게 목적은 아닙니다.

회사 자료를 밖에 보여 줘도 되나요

보여 줄 건 내가 일하는 방법입니다. 회사 자료를 그대로 보여 주면 안 됩니다.

  • 회사 이름, 로고, 고객 이름, 실제 매출·단가 같은 숫자는 전부 뺍니다.
  • 사내 문서를 복사해서 고치지 말고, 빈 문서에 처음부터 다시 씁니다. 머릿속 방법은 내 것이어도 파일은 회사 것입니다.
  • 돈을 받고 무언가를 하거나 사업자를 내는 단계로 가면, 먼저 회사 취업규칙의 겸업 조항을 확인합니다. 회사마다 신고만 하면 되는 곳도 있고 금지하는 곳도 있습니다.

이 선만 지키면, 회사 밖 한 명에게 자료 한 장 보여 주는 건 누구에게도 해가 되지 않습니다.

어떻게 보내고, 반응은 어떻게 읽나요

보낼 때는 짧게 부탁합니다.

"요즘 이런 걸 정리해 봤는데, 네 일에 쓸모가 있을지 한번 봐 줄래? 솔직하게 말해 주면 좋겠어."

그리고 답이 오면, 칭찬보다 질문을 봅니다. "좋다"는 말은 예의로도 나오지만, 질문은 정말 써 보려는 사람만 합니다.

이런 반응이 오면 이런 뜻이에요 다음에 할 일
"나도 이거 써 봐도 돼?" "다른 사람한테 보내도 돼?" 가져다 쓰고 싶을 만큼 쓸모가 있다 한 명 더, 이번엔 모르는 사람에게 보여 준다
"이 부분은 우리 상황엔 안 맞던데, 이런 경우엔?" 실제로 써 봤다 그 질문을 반영해 고친다. 가장 좋은 재료다
"이거 더 있어?" "얼마면 해 줄 수 있어?" 돈이나 시간을 쓸 마음이 있다 두 번째 것을 만들고, 겸업 규정을 확인한다
"좋네, 수고했어" 한 줄 예의상 답일 가능성이 크다 대상을 바꿔 본다. 그 문제를 겪는 사람이었나?
답이 없다 아직 모른다 누구에게·무엇을·어떻게 보냈는지 셋 중 하나를 바꿔 다시 보낸다

밤늦게 책상에서 지인의 반응을 받아 출력한 자료에 펜으로 줄을 긋고 메모를 더하는 손 — 반응이 없거나 애매하면 무엇을 고칠지가 보인다

반응이 오면 그게 첫 번째 확인입니다. 안 오면 무엇을 고쳐야 할지가 보입니다. 어느 쪽이든 회사를 그만두기 전에 알아 두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사표를 낸 뒤에 알게 되면, 고치는 동안의 생활비를 통장 잔고로 버텨야 하니까요.

그래도 지금 당장 나가야 하는 경우라면

모든 퇴사가 이 순서를 기다릴 수는 없습니다. 몸이나 마음이 버티지 못할 만큼 상했거나, 괴롭힘처럼 그 자리에 있는 것 자체가 해가 되는 상황이라면 먼저 나오는 게 맞습니다. 그건 나를 지키는 선택입니다. 준비가 부족해서 하는 선택으로 보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런 경우에도 이 글의 순서는 그대로 쓸 수 있습니다. 나온 다음 첫 달에 회사 밖 한 명에게 내가 만든 것 하나를 보여 주는 것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다만 순서를 고를 수 있는 상황이라면, 월급이 나오는 동안 확인하는 쪽을 권합니다.

정리하면

  • 퇴사하고 잘된 사람은 대개 용기보다 순서가 먼저였습니다. 송희구 작가도 블로그 글이 읽히고 책과 유튜브가 굴러간 다음에 나왔습니다.
  • 회사를 다니면서 먼저 시작한 창업자는 바로 그만두고 시작한 사람보다 실패할 확률이 33% 낮았습니다(Raffiee & Feng, 2014).
  • 나가고 싶은데 겁이 나는 건, 회사 밖에서 내가 통하는지 한 번도 확인해 본 적이 없어서입니다.
  • 이번 달 안에 회사 밖 사람 한 명에게 내가 만든 것 하나를 보여 줍니다. 자료 한 장, 글 한 편이면 충분합니다.
  • 무엇을 보여 줄지는 "사람들이 나한테 자주 묻는 것"과 "회사 이름을 빼도 쓸모 있는 것"에서 고릅니다.
  • 회사 이름·고객·숫자는 빼고, 빈 문서에 새로 씁니다.
  • 반응은 칭찬보다 질문으로 읽습니다. "나도 써 봐도 돼?"가 가장 분명한 신호입니다.

사표를 쓰기 전에, 이번 주 안에 보낼 사람 한 명의 이름부터 적어 보세요. 그 한 사람의 답이 지금 느끼는 겁을 가장 정확하게 줄여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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