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했는데 눈치가 보인다면 — 속도는 그대로, 업무시간 안에 끝내는 하루 순서

열심히 했는데 눈치가 보인다면 — 속도는 그대로, 업무시간 안에 끝내는 하루 순서

20대 중반, 제대로 일해 보는 건 지금 회사가 처음인 분이 있습니다. 프로젝트를 맡아 미친 속도로 달리고 있고, 짧아야 석 달, 길면 반년짜리 일을 몰아서 하느라 야근도 많습니다. 주변에는 미리 말해 뒀다고 합니다. 내 방식은 한시적인 거니까 부담 갖지 말라고요.

그런데 후임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사수가 그렇게 일하니까 자기가 못 버텼다고. 나이 많은 후임들은 받는 것보다 더 일하지 말라고, 업무 허들을 높이지 말라고 했습니다. 월급의 두 배만큼 일하는 게 미련하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앞에서는 말하지 않고 뒤에서 빼놓는 것도 느꼈다고 합니다.

이분은 직장인 커뮤니티에 이렇게 썼습니다.

"저는 그저 더 경험하고 싶었고, 그 경험으로 인해 배우는게 있길 바랐고"

열심히 했을 뿐인데 눈치가 보인다면, 이 글이 도움이 될 겁니다.

열심히 일하는 게 잘못인가요

잘못이 아닙니다. 첫 회사에서 더 많이 경험하고 싶고, 그 경험으로 빨리 배우고 싶은 마음은 귀한 마음입니다. 그 마음 덕분에 몇 년 뒤의 실력이 달라집니다.

다만 이 글에 달린 대답 중에 곱씹어 볼 말이 있었습니다.

"혼자만 열심히하면 상관 없는데 결국 회사가 남들에게까지 열심히를 강요하더라구요 … 열심히 야근하는게 아니라 열심히 해서 업무시간에 전부 쳐내는 목표로 해야지"

맞는 말입니다. 문제는 그 열심이 야근이라는 모양으로 보일 때 생깁니다. 열심히 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왜 내 야근이 팀의 기준이 될까요

야근이 길어지면, 본인이 원하지 않아도 그게 팀의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 퇴근 시간이 기준이 됩니다. 사수가 매일 밤 9시까지 남아 있으면, 후임은 6시에 가방을 들 때마다 눈치를 봅니다. "먼저 가도 되나?"를 매일 묻게 됩니다.
  • 속도가 기준이 됩니다. 팀장은 이 사람이 해낸 속도를 보고 다음 일정을 잡습니다. 그 속도가 야근으로 만든 속도라는 건 일정표에 적히지 않습니다. 후임들이 말한 "업무 허들"이 바로 이것입니다.
  • 말보다 행동이 크게 들립니다. "부담 갖지 말라"고 미리 말해 둬도, 매일 밤 켜져 있는 모니터가 더 크게 말합니다.

후임이 "사수가 그렇게 일하니까 못 버텼다"고 한 것도 이 때문일 겁니다. 이분은 누구에게도 야근을 시킨 적이 없지만,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 속도가 따라가야 할 기준처럼 보였습니다.

밤 사무실에서 한 자리만 불이 켜진 채 일하는 사람이 있고, 가방을 든 옆자리 동료가 먼저 나가기를 머뭇거린다 — 한 사람의 야근이 옆 사람의 퇴근 시간을 정하게 된다

오래 일하면 정말 더 많이 하게 되나요

생각만큼 늘지 않습니다.

스탠퍼드대 경제학자 존 펜카벨(John Pencavel)은 1차 세계대전 때 영국 군수공장 노동자들의 근무 기록을 분석했습니다. 주당 근무시간이 50시간 안팎을 넘어가자 시간당 생산량이 뚜렷하게 떨어졌고, 주 70시간 일한 사람들의 생산량은 주 56시간 일한 사람들과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Pencavel, The Economic Journal, 2015).

사무실 일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밤 9시에 쓴 문서는 다음 날 아침에 다시 고치는 경우가 많고, 피곤한 머리로 낸 결정은 한 번 더 확인해야 합니다. 늦게까지 남아 있으면 많이 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늘어난 건 해낸 일보다 앉아 있던 시간일 때가 많습니다.

속도는 그대로 두고 시간만 바꾼다는 게 무슨 뜻인가요

목표를 바꾸는 겁니다. "오늘 다 끝내기"에서 "업무시간 안에 끝내기"로.

"오늘 다 끝내기"가 목표면 일은 퇴근 시간을 넘어서까지 늘어납니다. 일이 남아 있는 한 계속 앉아 있게 되니까요. "업무시간 안에 끝내기"가 목표면 순서가 달라집니다. 무엇을 먼저 하고, 무엇을 내일로 넘기고, 무엇은 안 해도 되는지를 아침부터 정하게 됩니다.

같은 속도로 달리되, 그 힘을 퇴근 시간 안에 쏟는 겁니다. 속도를 늦추라는 뜻은 아닙니다. 에너지를 오래 버티는 데 쓰지 않고, 시간 안에 끝내는 데 씁니다.

그러면 두 가지가 같이 달라집니다. 미련하다는 말이 나올 데가 줄어듭니다. 그리고 늦게까지 남는 사람 대신 빨리 끝내는 사람으로 보입니다. 같은 일을 해도 그쪽이 훨씬 일 잘하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업무시간 안에 끝내는 하루 순서

오전·오후·퇴근 전으로 나눠 하루를 이렇게 굴려 보세요. 9시 출근, 6시 퇴근 기준입니다. 출퇴근 시간이 다르면 앞뒤로 옮기면 됩니다.

시간 할 일 왜
출근 직후 10분 오늘 끝낼 일을 3개까지만 적고, 그중 제일 무거운 일 하나에 표시 할 일이 많으면 다 할 수 없다는 걸 아침에 먼저 인정한다
오전(9~12시) 표시한 제일 무거운 일 하나부터. 메신저는 한 시간에 한 번만 확인 머리가 맑은 시간을 가장 어려운 일에 쓴다
점심 전 5분 오전 일이 어디까지 됐는지 한 줄 기록 오후에 다시 시작할 곳을 잃지 않는다
오후 전반(1~4시) 회의·협업·답장처럼 남과 맞춰야 하는 일 다른 사람들이 자리에 있는 시간에 몰아서 처리한다
오후 후반(4~5시) 남은 두 번째·세 번째 일 짧게 끝낼 수 있는 일을 뒤에 둔다
퇴근 1시간 전 남은 일을 적고, 내일로 넘길 것과 오늘 꼭 끝낼 것을 가른다 야근할지 말지를 이때 정한다. 9시에 정하지 않는다
퇴근 10분 전 내일 아침 처음 할 일 하나를 적고 노트북을 덮는다 다음 날 출근해서 헤매는 시간을 줄인다

이 표에서 가장 중요한 건 퇴근 1시간 전입니다. 대부분의 야근은 "조금만 더 하면 끝날 것 같아서" 시작됩니다. 한 시간 전에 남은 일을 적어 보면, 오늘 꼭 끝내야 하는 일은 생각보다 적습니다.

아침 햇빛이 드는 책상에서 커피 옆 노트에 오늘 할 일 몇 줄을 적고 번호를 매기는 손 — 업무시간 안에 끝내는 하루는 아침에 순서를 정하는 데서 시작한다

그래도 오늘 꼭 끝내야 하는 일이 남았다면

그날은 남아도 됩니다. 마감이 정말 오늘이고, 내일로 넘기면 누군가 곤란해지는 일이라면 야근은 그 일을 지키는 방법입니다. 다만 예외는 예외로 남겨 둡니다.

  • 퇴근 1시간 전에 "오늘 이건 꼭 끝내야 해서 한 시간 더 하겠습니다"라고 팀장에게 한 줄 알립니다. 야근이 이유 있는 일로 보입니다.
  • 내일로 넘기는 일이 있으면 그것도 한 줄 알립니다. "B는 내일 오전까지 드릴게요." 몰래 밤새 끝내는 것보다 신뢰가 쌓입니다.
  • 같은 이유로 야근이 일주일에 두 번 넘게 반복되면, 그건 내 속도 문제보다 일의 양 문제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때는 팀장과 일의 양을 이야기할 때입니다.

뒤에서 빼놓는 동료들과는 어떻게 지내야 할까요

말로 설득하려 하지 않아도 됩니다. 행동이 바뀌면 분위기가 먼저 바뀝니다.

"내 방식은 한시적이니 부담 갖지 말라"는 말은 좋은 뜻이었지만, 매일 켜져 있는 모니터 앞에서는 잘 들리지 않았습니다. 대신 제시간에 노트북을 덮는 모습을 몇 주 보여 주면, 후임들도 "저 사람 속도를 따라가야 하나"라는 부담을 내려놓습니다.

후임에게 일을 넘길 때는 기준을 말로 분명히 해 두면 더 좋습니다. "이건 목요일까지면 돼요. 저처럼 서두를 필요 없어요." 사수의 속도가 후임의 마감이 되지 않게 끊어 주는 한마디입니다.

더 배우고 싶은 마음은 어디에 쓰면 되나요

그 마음은 그대로 두셔도 됩니다. 다만 회사 일을 늘리는 쪽보다, 배운 걸 내 것으로 만드는 쪽에 쓰시면 좋겠습니다.

프로젝트를 하나 끝낼 때마다 무엇을 배웠는지 세 줄로 적어 두세요. 어떤 문제를 만났고, 어떻게 풀었고, 다음엔 무엇을 다르게 할지. 야근으로 쌓은 시간은 회사에 남지만, 이렇게 적어 둔 배움은 어디를 가든 나와 함께 갑니다.

정리하면

  • 열심히 하는 건 잘못이 아닙니다. 더 경험하고 배우고 싶은 마음은 귀합니다.
  • 다만 야근이 길어지면 본인이 원하지 않아도 그게 팀의 기준이 됩니다. 퇴근 시간도, 속도도.
  • 오래 일한다고 그만큼 더 해내지는 않습니다. 주 50시간 안팎을 넘으면 시간당 생산량이 떨어집니다.
  • 속도는 그대로 두고 목표를 바꿉니다. "오늘 다 끝내기"에서 "업무시간 안에 끝내기"로.
  • 아침에 할 일 3개를 적고, 제일 무거운 일부터 합니다. 퇴근 1시간 전에 남은 일을 가릅니다.
  • 오늘 꼭 끝내야 하는 날은 남되, 팀장에게 한 줄 알리고 예외로 남겨 둡니다.
  • 배우고 싶은 마음은 일을 늘리는 대신, 배운 걸 적어 두는 데 씁니다.

내일 아침 출근하면 자리에 앉자마자 오늘 끝낼 일 세 개만 적어 보세요. 그리고 퇴근 한 시간 전에 그 종이를 다시 꺼내 보세요. 그 두 번이 야근과 정시 퇴근을 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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