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너무 없어서 불안하다면, 이직보다 먼저 확인할 것
"연봉은 혼자 살 만큼 되는데 일이 너무 없습니다. 잡무만 많아서, 몇 년 더 있으면 회복 못 할 정도로 바보가 될 것 같은데 페이컷을 해서라도 이직하는 게 맞을까요."
직장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입니다. 댓글이 백 개 넘게 달렸는데, 그중 가장 많은 공감을 받은 건 이런 이야기였습니다.
"저도 그 마음으로 젊어서 사서 고생해보자며 이직트리를 탔다가, 진짜 돈 주고 고생만 했습니다. 지금 위치에서 자기계발이나 미래를 준비하면서 있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자리를 옮겼는데 실력이 자동으로 늘지는 않았다는 말입니다. 이 댓글이 이 글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불안의 원인을 자리에서 찾으면, 자리를 바꿔도 불안이 따라오기 때문입니다.
편한 자리가 위험한 게 아닙니다
우리는 보통 실력이 강도에서 온다고 생각합니다. 힘든 데서 굴러야 늘고, 편한 데 오래 있으면 감이 무뎌진다고요. 그런데 실제로 쌓이는 건 강도가 아니라 그 시간에 내가 뭘 만들었는지입니다.
바쁜 자리에서 5년을 보내고도 남은 게 없는 사람이 있고, 여유 있는 자리에서 자기 일을 하나씩 정리해 다음 회사의 무기로 들고 나간 사람이 있습니다. 갈린 건 회사의 속도가 아니라 그 시간 동안 손에 남긴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편한 자리가 위험한 게 아닙니다. 편한 자리에서 아무것도 안 만들고 있는 게 위험한 겁니다.
바쁠 때는 안 보이고, 편할 때만 보이는 것
그런데 왜 하필 편할 때 이 불안이 세게 올까요.
바쁘면 하루가 저절로 채워집니다. 회의에 들어가고 요청을 쳐내다 보면 저녁이 되고, 뭐라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남습니다. 그 느낌이 질문을 덮어줍니다.
편하면 그게 안 덮입니다. 시간이 비니까 그 시간에 내가 뭘 채웠는지가 그대로 드러납니다. 그래서 편한 자리의 불안은 게으름의 신호가 아니라 오히려 정확한 감지에 가깝습니다. 다만 그 감지를 "회사가 문제다"로 읽으면 답이 이직 하나로 좁아집니다.
이직을 고민하기 전에 물을 질문 하나
옮길지 말지를 정하기 전에 이것부터 확인해보시면 좋겠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나중에 이력서 한 줄로 쓸 수 있는 걸 만들고 있나?"
이 질문이 유용한 이유는 답이 셋 중 하나로 갈리기 때문입니다.
- 답이 있다 → 지금 자리에서 그걸 계속 쌓으면 됩니다. 여유는 오히려 자산입니다.
- 답이 없는데 만들 방법은 있다 → 이직이 먼저가 아니라 그 방법을 실행하는 게 먼저입니다.
- 만들 방법 자체가 없다 → 그때 옮기는 게 순서에 맞습니다.
이직을 막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순서를 바꾸자는 이야기입니다. 지금 자리에서 아무것도 못 만든 사람이 회사를 옮긴다고 갑자기 만들게 되지는 않으니까요.
일이 없는 자리에서 만들 수 있는 것들
"만들 게 없다"는 말은 대개 만들 게 정말 없는 게 아니라, 만들 것이 눈에 안 띈다는 뜻입니다. 지금 상황에 가까운 줄을 하나만 찾아 첫 행동까지만 해보시면 됩니다.
| 지금 상황 | 만들 수 있는 이력서 한 줄 | 이번 주 첫 행동 |
|---|---|---|
| 잡무가 반복된다 | 남이 그대로 따라 할 수 있는 업무 문서·양식 | 한 건만 순서대로 적어보기 |
| 자료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 팀이 계속 쓰는 기준표·체크리스트 | 최근 세 달 자료 모아 공통 항목 뽑기 |
| 비는 시간이 길다 | 우리 일에 대한 숫자(처리 건수·걸린 시간·오류율) | 한 달만 세어서 기록하기 |
| 다른 팀과 접점이 있다 | 그 팀 업무 한 조각을 넘겨받은 경험 | "이건 저희가 받아도 될까요" 한 번 묻기 |
| 밖으로 나가는 결과물이 없다 | 고객·외부에 나가는 문서나 발표 | 다음 건에 손들기 |
| 배울 만한 선배가 있다 | 그 사람 일의 앞뒤에 붙어본 경험 | 초안·회의록 정리를 자원하기 |
| 정말 아무것도 없다 | 내 직무의 표준 절차를 내 손으로 다시 쓴 문서 | 매뉴얼 초안 목차만 잡기 |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전부 남이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라 내가 남기는 일입니다. 회사가 안 시켜서 못 한다는 말이 안 통하는 항목들이기도 하고요.
그래도 옮기는 게 맞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지금 자리에서 버텨라"가 답인 건 아닙니다. 아래에 해당하면 옮기는 쪽이 맞습니다.
- 위에서 정리한 것 중 하나를 실제로 시도했는데, 조직이 그걸 막았을 때
- 세 달을 잡고 해봤는데 결과물이 회사 밖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는 종류일 때
- 직무 자체가 시장에서 사라지는 중이라 남기는 게 무엇이든 쓸모가 짧을 때
차이는 분명합니다. 앞의 경우는 해보고 나서 내린 결정이고, 그냥 불안해서 옮기는 건 해보기 전에 내린 결정입니다. 같은 이직처럼 보여도 다음 회사에서 갈리는 건 여기입니다. 해보고 나온 사람은 옮긴 자리에서도 똑같이 만들고, 안 해보고 나온 사람은 옮긴 자리에서도 똑같이 불안합니다.
정리하면
- 편한 자리가 위험한 게 아니라, 편한 자리에서 아무것도 안 남기고 있는 게 위험합니다
- 바쁘면 하루가 저절로 채워져서 질문이 덮이고, 편하면 그 질문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 판단 기준은 하나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나중에 이력서 한 줄로 쓸 수 있는 걸 만들고 있나?"
- 답이 있으면 쌓고, 없는데 방법이 있으면 그것부터 하고, 방법 자체가 없으면 그때 옮깁니다
- 시도해봤는데 조직이 막는다면 그건 옮길 이유가 맞습니다
불안은 자리를 옮긴다고 없어지지 않습니다. 내가 지금 뭘 만들고 있는지 알게 될 때 없어집니다. 그리고 그 답을 아는 사람은 이직을 하든 남든 흔들리지 않습니다.
지금 자리에서 무엇을 남길 수 있는 사람인지, 내 방식이 어디서 살아나는지 정리해보고 싶으시면 9WAY 강점 진단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커리어 방향, 전문가와 함께 설계하세요
강점 기반 진로 탐색과 커리어 전략을 CareerTech에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관련 글
고객이 "저는 잘하는 게 없는데요" 할 때, 다음에 무엇을 묻나요
고객이 "저는 잘하는 게 없는데요" 하면, 그다음 질문으로 무엇을 하시나요. 코치라면 다 겪어보셨을 겁니다. 질문을 바꿔가며 몇 회기를 파도 같은 자리에서 헛돌 때가 있습니다. 성과가 있었던 순간을 물어도 "그냥 운이 좋았어요"가 돌아오고, 칭찬받은 경험을 물어도 "그건 다들 하는 건데요"가 돌아옵니다. 이 글은 그 자리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
심리학 학위 없이 코치가 될 수 있을까 — 문턱이 높았던 진짜 이유
퇴근하고 나서 자격증을 검색해본 적 있으실 겁니다. 특히 상담이나 코칭에 관심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 이야기를 듣는 게 어렵지 않고, 주변에서 고민 상담을 자주 받아왔고, 지금 하는 일보다 그쪽이 오래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찾아보면 대학원이 나오고, 전문 자격은 몇 년씩 걸린다고 나옵니다. 그래서 매번 알아만 보다가 창을 닫습니다. 여러...
일 잘한다는 평가가 늘 같은 사람에게만 가는 이유
회사에서 일 잘한다는 소리, 아홉 명 중에 한두 명만 듣습니다. 나머지가 못해서가 아닙니다. "바로 시작하죠" 하는 사람은 잘해 보이고, "자료를 좀 찾아볼게요" 하는 사람은 답답하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두 사람 다 자기 일을 하고 있는데 평가가 갈립니다. 이 글은 그 평가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리고 리더와 개인이 각각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정리한 것...
느리다고 혼나는 사람이 마지막에 사고를 다 잡아냅니다
왜 이렇게 느리냐고 혼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마지막에 실수를 다 잡아냅니다. 출시 직전에 "잠깐만요, 마지막으로 다 점검할게요" 하는 사람입니다. 회의에서는 답답하다는 눈총을 받는데, 구멍은 늘 그 사람이 막습니다. 이런 사람도 있습니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자료부터 찾아보는 사람입니다. "일단 해보면 안 돼요?" 소리를 듣는데, 팀이 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