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두 달, 내가 느린 것 같다면 — 나를 정하기 전에 모을 근거 세 가지
지금 본인을 한마디로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꼼꼼한 사람, 느린 사람, 낯가리는 사람.
그거 정할 때 쓴 근거가 몇 개나 되십니까.
입사한 지 2주 된 분이 이렇게 적은 걸 봤습니다. "같이 입사한 동기에 비해서 이해도 느리고, 전반적으로 두뇌회전이 느려요." 2주입니다. 그리고 이분이 잰 건 하나였습니다. 옆자리 동기와 비교한 속도.
2주 만에 자기를 정하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먼저 이 말씀부터 드리고 싶습니다. 이분이 유난스러운 게 아닙니다.
들어간 지 2주 되면 잴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습니다. 제품도 모르고, 사람도 모르고, 이 회사에서 뭘 잘하는 게 잘하는 건지도 모릅니다. 그 상태에서 유일하게 눈에 바로 보이는 건 옆 사람의 속도입니다. 그러니 그걸로 재게 됩니다.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이분은 제일 먼저 출근하고 제일 늦게 퇴근하면서 익히려고 합니다. 그런데 갈수록 더 모르겠다고 합니다. 그 글에 달린 답도 비슷했습니다. 남들보다 더 하면 된다고, 공부도 더 하고 일도 더 하라고요.
여기가 막히는 자리입니다. 근거 하나로 나를 정해놓고, 그 하나를 더 하는 것으로 답을 찾으려 합니다. 속도로 자기를 정했으니 속도를 올리는 것 말고는 할 게 없어집니다. 그런데 2주짜리 속도 비교로는 애초에 답이 안 나옵니다.
자기를 안다고 믿는 사람과 실제로 아는 사람
이건 신입만의 일이 아닙니다.
조직심리학자 타샤 유리크 연구팀이 10건의 조사에 약 5,000명을 대상으로 자기 인식을 측정했습니다. 결과가 이랬습니다. 응답자의 약 95%가 자기는 스스로를 잘 안다고 답했는데, 연구팀의 기준을 충족한 사람은 10~15%로 추정됐습니다(Tasha Eurich, Harvard Business Review, 2018). 유리크 본인도 10~15%를 추정치라고 밝혔습니다. 확정된 비율로 읽을 수치는 아닙니다. 그래도 방향은 분명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자기를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이 연구에서 더 눈여겨볼 건 자기 인식이 두 갈래라는 점입니다. 내가 나를 어떻게 보는가와, 남들 눈에 내가 어떻게 보이는가. 이 둘이 따로 놉니다. 한쪽만 계속 들여다보면 아무리 오래 생각해도 정확해지지 않습니다.
그러니 2주치 관찰 하나로 자기를 판정하는 건 무리입니다. 판정을 미루고 근거부터 모으는 게 순서입니다.
지금 할 일은 근거를 모으는 겁니다
오늘부터 메모 하나만 열어두십시오. 앱이든 노트든 상관없습니다. 여기에 세 가지를 적습니다.
하나, 내가 가장 만족스러웠던 일. 잘한 일이 아니라 끝내고 나서 기분이 좋았던 일입니다. 결과가 대단하지 않아도 됩니다. 자료를 정리해서 넘겼는데 이상하게 뿌듯했다면 그것도 한 줄입니다.
둘, 다른 사람이 나에게 부탁하는 일. 남들이 반복해서 나에게 가져오는 일이 있습니다. 표 정리, 문장 다듬기, 사람 사이 조율, 자료 찾기. 사람들은 그 사람이 잘하는 일을 귀신같이 알고 가져옵니다. 본인만 그게 능력인 줄 모릅니다.
셋, 나에게 생산성이 제일 높은 일. 같은 한 시간을 써도 결과물이 유독 많이 나오는 일이 있습니다. 남들은 오래 걸리는데 나는 덜 걸리는 일이요. 힘이 덜 드니까 본인은 그걸 노력으로 안 칩니다.
한 달만 해도 각각 세 줄씩은 쌓입니다. 그때 그걸 놓고 판단하시면 됩니다. 남과 비교한 2주 말고요.
적을 때 흔히 막히는 지점
세 칸이 비어 있는 채로 며칠이 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개 아래 중 하나입니다.
| 이렇게 적으려다 막힙니다 | 이렇게 적으면 됩니다 |
|---|---|
| "커뮤니케이션을 잘함" | "박 대리님이 고객 메일 초안을 두 번 나한테 부탁했다" |
| "꼼꼼한 편인 것 같다" | "발주서에서 단가 오류를 찾아냈다. 남들은 안 보고 넘어갔다" |
| "오늘 좀 뿌듯했다" | "회의록 정리해서 올렸더니 팀장님이 그대로 복사해서 보고에 썼다" |
| "일이 잘 맞는 것 같다" | "경쟁사 자료 찾는 데 두 시간 걸릴 줄 알았는데 40분에 끝났다" |
| "동기보다 느리다" | (이건 적지 않습니다. 남과 비교한 등수는 근거가 아닙니다) |
기준은 하나입니다. 누가 무엇을 했는지가 적히면 근거이고, 내 상태에 대한 형용사만 적히면 근거가 아닙니다. "꼼꼼함"은 근거가 아니고 "단가 오류를 찾았다"는 근거입니다.
그리고 잘한 일만 적지 마십시오. 힘들었던 일, 유난히 하기 싫었던 일도 같이 적으면 석 달 뒤에 훨씬 정확해집니다. 안 맞는 자리를 아는 것도 나를 아는 일입니다.
옆에 신입이 있는 분이라면
이 사람들은 지금 자기에 대한 근거가 거의 없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한마디에 크게 흔들립니다.
빠르다, 느리다 대신 이렇게 말해주십시오. "너는 자료 찾아오는 게 늘 빨라." "네가 정리한 표는 내가 손 안 대도 되더라."
이 한마디가 그 사람에게 근거 하나가 됩니다. 자기 혼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각도의 정보라서 그렇습니다. 칭찬이라서 좋은 게 아닙니다. 앞의 연구에서 말한 두 번째 갈래, 남들 눈에 보이는 나가 바로 이겁니다.
반대로 "왜 이렇게 느려"는 이미 하나뿐이던 근거에 확인 도장을 찍어주는 일이 됩니다. 새 근거가 하나 늘어나는 게 아닙니다.
그럼 석 달 동안은 아무 판단도 하지 말아야 하나요
그건 아닙니다. 일하면서 판단은 계속 내려야 합니다.
구분할 건 이겁니다. 일에 대한 판단은 지금 내리고, 사람에 대한 판정은 미룹니다. "이 업무는 나한테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지금 알 수 있는 사실이고, 그러니 시간을 더 잡거나 도움을 요청하면 됩니다. "나는 원래 느린 사람이다"는 다른 종류의 문장입니다. 이건 앞으로의 모든 일에 미리 답을 정해버립니다.
앞의 사연자가 실제로 알아내야 했던 건 자기가 느리다는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자기가 뭘 잘하는지였습니다. 이걸 모른 채로 시간이 가면 2주가 1년이 되고 3년이 되는 동안 비교만 커지고, 일에 대한 자신감은 계속 떨어집니다.
정리하면
- 입사 초에 자기를 규정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 자리에서 잴 수 있는 게 옆 사람 속도밖에 없습니다.
- 다만 근거 하나로 나를 정해놓으면, 그 하나를 더 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어집니다.
- 사람은 자기를 생각보다 정확히 모릅니다. 스스로 안다고 답한 95% 중 실제로 기준을 충족한 건 10~15%였습니다.
- 지금 할 일은 수집입니다. 판정은 그다음입니다. 만족스러웠던 일, 남이 나에게 부탁하는 일, 나에게 생산성이 높은 일. 세 칸을 한 달만 채웁니다.
- 적을 때는 형용사 말고 사실을 적습니다. "꼼꼼함"이 아니라 "단가 오류를 찾았다"입니다.
- 일에 대한 판단은 오늘 내리고, 사람에 대한 판정은 근거가 쌓인 뒤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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