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조건은 다 받았는데 마음이 안 놓인다면 — 회사가 못 주는 것 하나

퇴사 조건은 다 받았는데 마음이 안 놓인다면 — 회사가 못 주는 것 하나

10년 다닌 회사를 그만두기 하루 전날, 게시판에 이런 글이 올라왔습니다.

회사는 잘 보내주기로 했다고 합니다. 6개월치 유급휴가를 쓰라고 했고, 퇴직금과 그해 성과금도 다 주겠다고 했습니다. 이직을 해도 되고 그냥 쉬어도 되고 나중에 다시 와도 된다고, 전부 알아서 하라고 했다고요.

그런데 이 사람이 글 마지막에 물어본 건 이거였습니다.

"진짜 고생한 거 맞죠? 저 응석부리는 거 아닌 거 맞겠죠?"

10년을 어떻게 다녔는지도 적혀 있었습니다. 야근은 정말 많았는데 일이 재밌고 사람들이 좋아서 버텼다고요. 중간에 부사수가 나가는 바람에 그 몫까지 하다가 몸까지 크게 상했고, 그러고도 밤 열두 시 한 시까지 일했습니다.

회사가 줄 수 있는 건 다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이걸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있었습니다.

조건을 다 받았는데 왜 마음이 안 놓일까요

그 글에 달린 댓글은 하나였습니다. 고생 많으셨다고, 좋은 일만 있으시라고요.

그 한 줄 들으려고 10년 다닌 회사 이야기를 써서 올린 겁니다. 그러니까 이분에게 아직 안 받은 게 하나 남아 있었던 거죠. 그게 돈도 휴가도 아니었을 뿐입니다.

회사는 돈을 정할 수 있고 휴가도 정할 수 있고 자리도 정할 수 있습니다. 다 회사가 가진 것들이니까요. 그런데 "이제 그만해도 된다"는 말은 회사가 못 줍니다. 그건 회사가 가진 물건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조건이 아무리 좋게 나와도 마음이 안 놓입니다. 받은 건 조건이고, 기다린 건 그 말이었으니까요.

회사에 말해서 받을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이걸 한번 나눠보면 지금 내 상태가 꽤 정확히 보입니다.

회사가 가지고 있어서 말하면 받을 수 있는 것 회사한테 없어서 기다려도 안 오는 것
퇴직금·성과금·연차 정산 "너 진짜 고생했다"는 말
인수인계 기간, 퇴사 날짜 내가 10년을 잘 썼다는 인정
재입사 가능 여부, 추천서 지금 그만둬도 된다는 허락
남은 휴가, 유급 기간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인
업무 범위 조정, 부서 이동 여기 있는 동안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대한 답

왼쪽은 말해서 받아내면 됩니다. 협의가 되는 것들이니까요. 오른쪽은 아무리 좋은 회사여도 안 나옵니다. 그리고 우리가 퇴사를 앞두고 몇 달씩 못 정하고 있을 때, 기다리고 있는 건 대부분 오른쪽입니다.

그만둘까 말까 할 때 먼저 정할 것 한 가지

그래서 질문을 이렇게 바꿔보시면 좋겠습니다.

"지금 회사에서 뭘 하나 더 받으면 마음이 놓일 것 같은가?"

떠오른 게 왼쪽 것이면 아직 대화가 남은 겁니다. 인수인계 기간을 한 달 더 달라거나, 다음 달까지만 다니겠다거나, 남은 연차를 붙여 쓰겠다는 것들이요. 이건 말해서 받아내면 마음이 실제로 놓입니다.

떠오른 게 오른쪽 것이면 회의실에서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고생했다"는 말을 듣고 나가고 싶은 거라면, 그건 기다려도 안 옵니다. 그 말을 해줄 사람이 지금 그 자리에 없어서예요.

이 구분이 중요한 건 기다릴 대상을 잘못 잡으면 시간만 간다는 점 때문입니다. 회사한테 없는 걸 회사에서 기다리는 동안, 정작 정해야 할 건 하나도 안 정해집니다.

회사가 못 주는 그 말은 이렇게 만듭니다

그럼 그 말은 누가 하느냐. 결국 내가 나한테 해야 합니다. 그런데 "나 고생했어"라고 혼자 되뇌는 건 잘 안 됩니다. 근거가 없으면 말이 안 붙거든요.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회사가 쳐준 성과 말고, 나만 아는 날을 하나 떠올려서 그날 내가 뭘 했는지 한 줄로 적어보는 겁니다.

아무도 안 본 날이라 아무도 안 쳐줬을 뿐이지 없던 일은 아니잖아요. 이런 것들입니다.

  • 사람이 빠진 자리를 몇 달 동안 말없이 메운 날
  • 고객이 화가 났을 때 밤에 혼자 남아 자료를 다시 만든 날
  • 후배가 실수한 걸 대신 정리하고 그 얘기를 아무 데도 안 한 날
  • 아무도 안 보는 문서를 다음 사람 쓰기 편하게 고쳐둔 날
  • 몸이 안 좋은데 그 주 마감만은 넘기지 않은 날

한 줄씩 세 개만 적어보시면 대개 그날의 장면이 같이 떠오릅니다. 그 한 줄이 내가 나한테 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건 퇴사할 때만 쓰는 게 아니라, 경력을 정리해야 할 때 그대로 재료가 되는 기록이기도 합니다.

그럼 조건 협상은 의미가 없다는 말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순서 문제일 뿐입니다.

받을 수 있는 건 다 받고 나가시는 게 맞습니다. 남은 연차, 정산, 인수인계 기간, 재입사 여지까지요. 그건 나중에 실제로 아쉬운 대목이 되고, 안 챙기면 못 챙깁니다.

다만 그걸 다 챙긴 뒤에도 마음이 안 놓일 수 있다는 걸 미리 아시는 게 좋습니다. 그때 "조건이 부족한가" 하고 다시 조건을 뒤지기 시작하면 결정이 계속 미뤄지거든요. 부족한 게 조건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리고 반대 경우도 있습니다. 조건을 따져봤는데 실제로 많이 부족한 경우요. 그때는 마음의 문제가 아니라 협의를 더 하셔야 합니다.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어디서 오는지부터 나눠보는 것이 먼저인 것도 그래서입니다.

남기로 한 경우에도 같은 질문이 쓰입니다

이 질문이 좋은 건 결론을 퇴사로 몰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뭘 하나 더 받으면 마음이 놓일까"에 대한 답이 "지금 하는 일이 어디에 쓰이는지 아는 것"이거나 "내가 뭘 잘하고 있는지 한 번 듣는 것"으로 나오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건 회사에 요청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팀장에게 "제가 이번 분기에 뭘 챙기면 팀에 제일 도움이 될까요"라고 묻는 것부터가 그 요청이고요.

9WAY가 조직에서 몰입을 볼 때 쓰는 여섯 가지 중에 인정이 있습니다. 막연한 칭찬이 아니라 내 어떤 행동이 무슨 도움이 됐는지 보이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퇴사를 앞두고 낯선 사람들에게 "저 고생한 거 맞죠"라고 묻게 되는 상황은, 그 인정이 10년 동안 한 번도 구체적으로 도착한 적이 없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만두는 얘기를 꺼내면서도 이래도 되나 싶으셨다면

여러분이 약해서가 아닙니다. 회사한테 못 받는 걸 회사에서 기다리고 계셨던 겁니다.

조건이 나쁘지 않은데도 못 놓는 자기를 두고 나약하다고 부르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조건과 마음은 원래 다른 자리에서 정해집니다. 조건은 협의에서 정해지고, 그만해도 된다는 마음은 내가 나에게 무엇을 인정해주느냐에서 정해지니까요.

그러니까 지금 그만둘까 말까로 오래 걸려 계시다면, 회사 조건표를 다시 열기 전에 한 줄부터 적어보시면 좋겠습니다. 아무도 안 쳐줬지만 내가 아는 날 하나요. 결정은 그 뒤에 하셔도 늦지 않습니다.

떠날 때의 목표는 잘 그만두는 게 아니라 가장 나답게 일할 수 있는 자리로 옮겨가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자리에서 나답게 일하는 사람인지 궁금하시면 9WAY 강점 진단이 참고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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