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하는데 인정을 못 받는다면 — 회사마다 다른 채점표
5년 동안 일 못한다는 소리를 듣던 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회사를 옮겼더니, 이번엔 같은 사람한테 스마트하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 몇 달 사이에 실력이 늘었을 리는 없습니다. 그럼 뭐가 바뀐 걸까요.
커뮤니티에서 읽다가 한참 멈춘 글이었습니다. 이분은 석사까지 하고 연구원으로 일했는데, 주변이 다 잘하는 사람들이라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꼈다고 합니다. 그래서 주말이고 밤이고 없이 일했는데도 인정을 못 받았고요. 월급은 동결이었고, 자존감도 계속 내려갔습니다.
그 회사에서 일 잘한다는 건 주말을 내는 거였습니다
특히 이 문장에서 멈췄습니다.
"주말에 일을 안 하면 바로 빵꾸가 나는 구조였다. 그런데 주말 근무를 쳐주지도 않고, 그걸 해결했다고 인정해주지도 않았다."
그러다 마지막 해에 주말 근무를 끊었더니, 은근히 들리던 일 못한다는 소리가 그때부턴 대놓고 나왔다고 합니다.
여기서 이 회사의 기준이 드러납니다. 그러니까 이 회사에서 일 잘한다는 건 사실 주말을 내는 거였던 겁니다. 아무도 그렇게 말한 적은 없지만 점수는 거기서 매겨지고 있었고요.
그리고 이건 이 회사만의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왜 회사마다 잘한다는 말의 뜻이 다를까요
평가라는 게 생각보다 평가받는 사람을 덜 반영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평가하는 쪽이 뭘 중요하게 보는지가 더 많이 들어갑니다.
이걸 숫자로 보여준 연구가 있습니다. 스컬런과 마운트, 고프가 2000년 『Journal of Applied Psychology』에 실은 분석은 관리자 2,350명과 2,142명을 각각 상사·동료·부하 등 일곱 명이 평가한 자료를 뜯어봤습니다. 그랬더니 점수가 갈리는 이유 가운데 평가자 개인의 성향으로 설명되는 몫이 62%와 53% 였습니다. 정작 평가 대상자의 실제 성과로 설명되는 몫은 그보다 훨씬 작았고요.
다만 이 연구는 회사끼리를 비교한 게 아니라 한 사람을 여러 사람이 평가했을 때를 본 겁니다. 그러니 이 숫자를 회사 단위로 그대로 옮길 건 아닙니다. 가져올 건 방향 하나입니다. 평가는 내가 얼마나 잘하는지보다, 보는 쪽이 무엇을 잘한다고 부르는지를 더 많이 담고 있습니다.
평가자 한 명이 그런데 회사 전체라면 어떻겠습니까. 어떤 데는 빠른 걸 쳐주고, 어떤 데는 늦게까지 남아 있는 걸 쳐주고, 또 어떤 데는 사고 안 나는 걸 쳐줍니다. 말하자면 회사마다 채점표가 따로 있는 셈입니다.
문제는 그 채점표가 어디에도 안 붙어 있다는 겁니다
인사평가 항목표에 적혀 있는 건 대개 진짜 채점표가 아닙니다. 거기엔 성실성이나 협업 같은 말이 적혀 있는데, 실제로 점수가 갈리는 자리는 따로 있습니다.
게다가 그 회사 사람들도 자기들이 뭘 쳐주는지 잘 모릅니다. 물어보면 "일 잘하면 인정받죠"라고 답하지, "여기선 주말을 내는 사람을 인정합니다"라고 답하지 않습니다. 본인들에겐 그게 너무 당연해서 굳이 말이 안 되는 거죠.
그렇게 보면 이분이 5년 동안 들은 소리는 실력이 부족하다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이분이 잘하는 것과 그 회사가 쳐주는 게 달랐다는 뜻이었죠. 그러니까 회사를 옮기자마자 같은 사람이 스마트해진 겁니다. 본인도 이렇게 썼더군요.
"옷을 갈아입으니 평가가 완전히 달라지더라."
그럼 지금 있는 자리에서 어떻게 읽을까요
한 달만 보시면 됩니다. 그것도 거창한 분석이 아니라 딱 하나만 세는 겁니다.
여기서 일 잘한다는 소리를 듣는 사람들, 그 사람들은 뭘 해서 그 소리를 듣고 있나.
주차별로 나눠서 보시면 훨씬 선명해집니다.
- 1주차 — 칭찬이 나오는 자리를 봅니다. 회의에서, 메신저에서, 회식 자리에서 누가 칭찬을 받는지. 그리고 무엇 때문에 받는지까지 적습니다.
- 2주차 — 최근 1~2년 안에 승진하거나 좋은 평가를 받은 사람들의 공통점을 봅니다. 그 사람들이 뭘로 올라갔는지요.
- 3주차 — 윗사람이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을 봅니다. 회의에서 어떤 말이 나올 때 표정이 풀리는지가 제일 정직한 신호입니다.
- 4주차 — 반대로 혼나는 자리를 봅니다. 뭘 안 했을 때 문제가 되는지요. 칭찬보다 이쪽이 더 정확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 회사는 어느 쪽에 가깝나요
한 달치를 모아놓고 아래에서 제일 가까운 걸 하나 고르시면 됩니다. 두 가지가 섞여 있는 회사도 흔합니다.
| 채점표 유형 | 실제로 쳐주는 것 | 이런 신호가 보입니다 |
|---|---|---|
| 속도형 | 빨리 돌려주는 것 | "그건 언제 되나요"가 제일 자주 나온다 |
| 체류형 | 오래 붙어 있는 것 | 늦게까지 남은 사람 이름이 자주 거론된다 |
| 무사고형 | 문제를 안 내는 것 | 잘한 일보다 사고 난 일이 오래 회자된다 |
| 숫자형 | 눈에 보이는 실적 | 회의 첫 화면이 늘 숫자다 |
| 절차형 | 정해진 대로 하는 것 | 결과보다 "왜 그 순서로 안 했냐"를 먼저 묻는다 |
| 관계형 | 사람을 안 불편하게 하는 것 | 실력 얘기보다 "같이 일하기 어떤가"가 먼저다 |
| 개척형 | 없던 걸 만들어오는 것 | 시킨 일만 한 사람이 조용히 밀린다 |
| 정확도형 | 틀리지 않는 것 | 빠르게 낸 결과물의 오타를 먼저 짚는다 |
| 조율형 | 부딪히는 데를 붙여놓는 것 | 회의를 잘 끝낸 사람이 칭찬받는다 |
| 헌신형 | 급할 때 나서는 것 | 주말·야간 대응한 사람 이름이 오래 남는다 |
이름을 붙이는 게 중요합니다. "여기는 왠지 인정을 안 해준다"는 느낌은 손에 안 잡히는데, "여기는 무사고형이다"까지 오면 그때부터 판단이 됩니다.
읽고 나면 물어볼 게 하나 생깁니다
그 답이 내가 계속 낼 수 있는 것인가입니다. 잘하고 못하고가 아니라, 몇 년을 계속해도 괜찮은 종류인가를 보시는 겁니다.
세 가지로 나눠보면 대개 갈립니다.
- 이미 하고 있는데 안 보이는 것이라면 — 채점표를 못 읽은 게 아니라 내 결과물이 그 언어로 안 나가고 있는 겁니다. 하는 일을 바꾸는 게 아니라 보고와 공유 방식을 그 채점표에 맞추면 꽤 빨리 바뀝니다.
- 할 수는 있는데 안 하고 있던 것이라면 — 그건 몰라서 안 한 겁니다. 이 경우가 제일 억울하고, 제일 빨리 회복됩니다.
- 몇 년을 해도 내가 못 낼 종류라면 — 그건 실력이 아니라 맞물림의 문제입니다.
세 번째에 해당한다고 해서 당장 옮기시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다만 그때부터는 자책의 방향이 바뀝니다. 더 하면 될 일과 아무리 해도 안 될 일을 구분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꽤 가벼워지거든요.
채점표가 다른 것과 내 실력이 모자란 것은 다릅니다
여기서 조심할 게 있습니다. 안 맞는다는 설명이 편해서 실제로는 실력이 부족한 대목까지 채점표 탓으로 넘기게 되면, 그때부터는 아무것도 안 바뀝니다.
둘은 이렇게 갈라집니다.
- 채점표가 다르면 옮긴 자리에서 달라집니다. 실력이 문제였다면 어디를 가도 같은 지적이 따라옵니다.
- 채점표가 다르면 지적의 종류가 하나로 모입니다. 늘 같은 얘기(느리다, 안 남는다, 안 나선다)만 반복되죠. 실력이 문제일 때는 지적이 여러 갈래로 나옵니다.
- 채점표가 다르면 그 회사에서 잘한다는 사람의 방식이 나와 확연히 다릅니다. 방식은 비슷한데 결과만 다르다면 그건 실력 쪽을 보셔야 합니다.
세 가지가 다 아니라면 채점표 얘기는 잠깐 접어두시는 게 낫습니다.
5년을 자책할 일이, 한 달이면 끝날 수도 있습니다
일하는 사람과 조직이 얼마나 맞물리는지는 오래 연구되어 온 주제입니다. 크리스토프브라운 연구팀이 2005년 172개 연구를 모아 분석한 결과를 보면, 그 맞물림은 일에 대한 만족과 오래 다니는 정도에 꾸준히 이어졌습니다. 능력과 별개로 맞물림이 따로 작동한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니까 오늘도 내가 부족한가 싶은 채로 퇴근하셨다면, 실력을 더 채우기 전에 이것부터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여기서 잘한다는 소리를 듣는 사람들이 뭘 해서 그 소리를 듣고 있는지요.
그 답이 내가 계속할 수 있는 것이면 여기는 오래 갈 자리입니다. 아무리 봐도 아니다 싶으면, 그건 내가 부족한 게 아니라 채점표가 다른 겁니다.
사람마다 힘을 잘 내는 조건이 다르고, 그래서 같은 노력을 해도 결과가 잘 보이는 자리와 안 보이는 자리가 갈립니다. 내가 어떤 조건에서 잘 되는 사람인지 궁금하시면 9WAY 강점 진단이 참고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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